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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시작되는 노동의 이야기

이번 4호에서는 지난 가사노동에 이어 다른 종류의 돌봄노동인 간병노동, 그리고 아픈 몸의 노동할 권리와 노동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질병과 치료와 그 이후의 경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민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예술계 프리랜서 노동자이자 비혼 여성인 저는 프리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점점 건강을 잃어갔고 가난과 분투하느라 나의 몸이 보내는 신호는 뒷전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암이라는 질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중증질환들이 그렇듯 암은 오랜 집중치료와 요양을 필요로 합니다. 중증질환에 대한 국민보험의 혜택도 도움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보험을 들어둔 덕에 돌봄을 위해 가족들의 희생을 덜 수 있는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병실은 아니었지만 오랜 입원 기간 동안 간병인의 일들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언어가 수월하고 노동집약적인 일에 포진해 있는 중국 교포들은 이미 오랫동안 간병업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병원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지켜본 많은 간병인은 여성이자 외국인인 노동자였고, 새벽부터 밤까지 병실 한켠에 자신의 거처이자 일터이자 쉼터인 작은 간이 침대를 두고 환자들을 먹이고 씻기는 체력적인 일 뿐만 아니 라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진 환자들의 정서적 돌봄같은 정동노동 또한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노인 인구가 …

요양보호사 경력 8년차 김금옥 베테랑

이제는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10년 전 한국에 들어와 8년 동안 전국의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소속된 간병 협회에서 팀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김금옥 베테랑. 24시간 근무하는 특성상 바쁜 와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 영상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런데 첫번째 영상 인터뷰 이후, 김금옥 베테랑에게 꼭 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 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게 그만큼 자신의 노동의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또 다른 면대면 인터뷰를 통해 답변을 보충했다. 이 글은 한 번의 영상 인터뷰와 같은 질문으로 추가 인터뷰한 답변을 편집해 정리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중국에서 온 김금옥입니다. 한국 온 지 10년 되었습니다. 간병일을 한 지 8년 되었습니다. 일대일 간병부터 공동 간병까지 모두 경험했습니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온지 10년 됐어요. 처음에는 한국 일을 모르니까 식당일, 설거지부터 시작했어요. 한 반 년 해보니까 일이 많이 안 힘들더라고요. 배달집에서 설거지를 하다보니 배달이 들어올 땐 엄청 많이 들어오고 놀 땐 노는데, 노는 시간을 이용해 주방장을 많이 도와줬어요. 근데 설거지가 엄청 들어올 땐 주방장이 안 도와주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방장은 돈 많이 버는데 저는 한 달에 두 번쉬고 150만 원 받고 일을 …

공단서점 가는 길

나는 명자언니에게 궁금한 것들이 참 많다. 펭귄어패럴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늦어 언니를 집에 바래다주던 길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노동의 철학’이라. 늘 그랬듯이 명자언니는 나를 어딘가로 이끄는 ‘단서’를 던져줬다. 나는 종종 언니와 사람들에게 ‘명자언니는 저의 페르소나예요.’ 라고 말하곤 한다. 대화를 통해 언니가 던져주는 ‘단서’들은 내가 살아가며 작업을 이어나가는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노동의 철학」이라는 책의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상상만 하기엔 그 이름이 너무나도 거룩했다. 이 책을 꼭 구해서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저길 뒤지다 어느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노란색 표지가 선명한 「노동의 철학」(광민사 엮음,1980)을 발견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한 권의 책은 그렇게 내 앞에 펼쳐졌다. 내가 태어난 해에 출판된 이 책은 딱 나만큼 나이를 먹은 동갑내기 친구였다. 처음 만났지만 명자언니의 기억이 통로가 되어 오래 전부터 곁에 두고 지내던 듯 친근했다. 그렇게 나는 「노동의 철학」을 또박또박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놀라웠다. 40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진보적이며 때로는 그 진보를 넘어섰다. 맹목적으로 비판의 자유 없이 무엇인가를 믿는 것은 종속입니다. 받아들여서 하는, 또한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고서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것은 종속이 아닙니다. ‘모든 …

아픈 몸과 노동

아픈 몸이라서 직장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건강이 우선이지, 돈이 우선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건강도 없다. 알다시피 소득이 적을수록 많이 아프고 일찍 죽는 시대다. 가난할 수록 질병 발병률이 높고, 충분한 치료가 어려우며, 적절한 생활 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가난하면 아프기 쉬운데, 아프면 노동 시장에서 탈락하고 더욱 가난해진다. 삶이 힘든 게 질병 때문인지 가난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여성이 아플 때 이런 현실은 심화된다. 건강한 몸일지라도, 여성 노동자가 직장을 잃으면 더욱 별것 아닌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먹여 살려주면 되는 존재고, 남편이나 아버지인 남성 노동자 대신 직장을 잃어줘야 하는 존재다. 심지어 1인 가구 여성의 경우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나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쉽게 해고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먹여 살려줄 가족이나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서, 유일한 생계 부양자가 본인이라는 사실은 삭제된다. 이런 현실이니, 아픈 여성의 해고는 더욱 쉽고, 아픈 여성이 직장을 구하려고 할 때의 절실함도 마찬가지로 삭제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여성들이 몸이 아플 때, 남성들과 달리 가사노동을 쉴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몸이 아픈 여성들을 인터뷰해보면, 몸이 아파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할 때 가사 …

강한 물살은 돌을 치운다

돌무더기로 가득한 바다를 헤엄쳐 언젠가는 춤추고 싶어 파도를 가르는 고래들과 함께 – 흐른, 우리는 매일매일 中에서   의아할 만큼 돌무더기가 많다. 장애와 여성이 함께 놓였을 때, 이상할 만큼 자유가 제한된다. 마치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라는 전제가 제곱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근거 없는 인식은 장애여성의 노동을 돌무더기가 가득한 바다로 만들었다. 돌무더기가 만든 현실은 이러하다. 15세부터 74세까지의 서울시 장애여성 중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비율은 26.8%이다. 장애남성의 경우 54.8%로 여성의 2배 이상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장애여성의 가장 활발한 경제활동 시기는 25세에서 34세이다. 이때 51.5%의 장애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데, 같은 시기 장애남성의 경제활동률은 74.6%이다. 20%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경제활동률 양상은 연령이 높아짐과 함께 더 벌어진다. 55세-64세 시기가 되면 장애여성은 30.1%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만, 남성은 66.1%가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장애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율의 장애여성만이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며 시작한 WSW에게 장애여성의 노동은 반드시 주목해야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주목에 앞서 배움이 필요했다. 이번 호는 WSW의 배움의 공유이다. ‘모두가 살만한 세상’에서는 35년간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여환숙 베테랑의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복지법의 허울과 장애인의 노동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마주할 수 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활동하고 …

모두가 살만한 세상

마땅한 것들이 있다. 시각장애인의 직업 권한 보장을 위해 특정한 직군을 그들에게 한정하는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혹자는 이에 대하여 비장애인의 직업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선 장애인의 직업적 자유 역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같은 선상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서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직업적 자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WSW는 이번 호에서 35년 동안 안마업을 지속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여환숙 베테랑을 만나보았다. 두 손으로 다른 이의 몸을 치료해주며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연남동에 사는 여환숙이고요. 1984년 맹학교 졸업하고 시각장애인 선교하고 녹음도서관에서 2년 근무하다가 1986년 4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침술원을 운영했어요. 연남동으로 2007년에 이사를 해서 2년 동안 일을 안 하려고 쉬었는데, 또 쉬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2009년에 연남동에서 지압원을 개업했어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압원을 개업한 것은 우리 시각장애인이 2005년에 시각장애인 안마업 권한을 빼앗기고 다시 찾아오는 과정에서 침술원으로 간판을 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압원으로 간판 걸면서 이제 침술원 간판을 걸 수 없으니 지압원을 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보통 맹학교에서 침술, 물리치료, 안마, 지압을 다 가르치거든요.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그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이 …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화가를 꿈꾸며 20대가 되었다. 동생들의 숙제를 봐주고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을땐 진학도 취업도 가능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이유가 있었더라도 가족, 친지에게 면목이 없었다. 성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과 편지 주고받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래던 중 동네에 부업거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죽 조각을 이어붙이고 잘라내는 알바였다. 간단한 설명과 시연을 통과하고 첫 일감을 받아 신나게 작업 했었다. 그렇게 첫 알바로 생긴 돈은 동생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주는데 썼다. 큰 기쁨이었다. 이후 한복집 근무, 숙식 가능한 한복학원 수료 후 다시 한복집 근무하며 순복음 신학원 수료, 신앙잡지사 삽화그리기, 한복그림 그리기 알바, 청바지제조 공장, 개척교회 벽화 그리기, 컴퓨터학원 텔레마케터를 하며 쉬지 않고 9년이 채워졌다. 결혼하며 전업주부로 13년째 되던 해 장애여성공감 부설 극단 춤추는허리에 발을 들였다. 그 즈음 43년의 삶을 돌아보며 분명히 보람이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나의 내면에서 찾으려했고 느리고 게으른 탓에 뭔가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변화의 계기를 찾던 시기였다. 마침 춤추는허리의 정기공연 한 달 여를 남기고 기존 배우의 갑작스런 개인 사유로 공석이 생겼고 장여여성공감의 1기 장애여성학교 퀼트반 회원이었던 내게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부담과 호기심을 오가다 출연 제안을 거절했을 때 …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팽귄어페럴이 있는 시장의 옥상에 서있다. 왼편엔 강명자가 오른편엔 신소우주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은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일자박기 연습시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구로공단 ‘대우어패럴’의 여공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밟고 있는 강명자. ‘펭귄시장’이라는 낡은 상가건물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며 문화예술분야의 기획자로 활동하는 신소우주. 두 사람 각자에게 상징적인 장소로부터 이름을 따온 펭귄어패럴은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사회적인 발언을 고민하고 협업하는 소규모 봉제공장이다. 펭귄어패럴의 운영을 시작했던 2018년 여름, 나는 공업용 미싱을 처음 밟게 되었는데 그 첫 날부터 덜컥 겁이 났다. 호기롭게 명자언니와 봉제공장의 문을 열었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공업용 미싱의 전원을 켜자마자 들려오는 묵직하고 거친 시동 소리는 그야말로 기계다웠다. “우웅.. 지잉..” 어렸을 때 집에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할머니의 손미싱이나 엄마의 가정용 미싱과는 차원이 다른 낯선 존재였다. 힘과 속도 면에서 스케일이 달랐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연습이 필요했다. 40년 경력의 미싱사인 명자언니와 호흡을 맞춰 나가려면 초보미싱사인 나에겐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는 가장 기본적인 봉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자박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봉제용어로는 본봉, 흔히 직선박기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일자박기라고 부른다. 그렇게 일자박기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싸고 부담 없는 흰색 우라(안감) 원단에 흰색 실로(잘 못 박아도 티가 나지 않도록) 매일 매일 일자박기를 연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명자언니는 그런 나를 의아하게 여겼다. …

여성의 노동, 노동의 가치 : 가사노동 다시보기

WSW 2호는 성별화된 노동으로 손꼽히는 ‘가사노동’을 살펴봅니다.보통 ‘주부’ 라고 불리우는 가사노동 베테랑 권현미님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는 동시에 전문적인 직업인 ‘가정관리사’ 로 활동하고 있는 현업 돌봄노동 전문가이자 전국가사노동자협회의 김재순 안산 지부장의 글을 통해 가사노동의 노동의 가치를 알아봅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노동인 ‘가사노동’은 무급노동이라는 인식과 동시에 아직도 여전히 여성의 것으로 성별분화되어 인식되어 있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집안일은 돈이 되지 않아서, 혹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은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이야기 되곤 합니다. 하지만 살림은 많은 능력을 요합니다. 정해진 예산으로 효율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기획력과 체계성이 필요한 동시에 많은 육체적 소모를 요하는 노동인 복합적인 노동입니다.  주로 이 노동을 하는 주체라고 여겨지는 ‘엄마’는 수많은 노동적 기술과 육체노동을 수행하면서도 노동의 전문성이나 디테일보다는 그저 고맙고 대단하고 때론 숭고한 것으로 치켜 세워지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결국 여전히 그것이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가족을 책임지는 엄마의 몫으로 타자화됩니다.   여성의 것으로 성별화된 가사노동은 금전적 가치와 노동권 또한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기에 직업으로써 가사노동의 처우 또한 열악합니다. 특히 최근에 가사도우미 어플같이 다양한 가사노동 플랫폼이 생겨났지만 그곳에서 노동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내부적인 경쟁을 통해 더 낮은 임금을 받게 되고 상해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

중심을 잡아주는 일, 꼭 필요한 일

  “저는 매일 아침마다 퍼즐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밤에 설거지를 해서 엎어 놓고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그릇마다 뚜껑 찾아서 여기 놓고 저기 놓고 이 장에 놓고 저 아래 장에 놓고 하는 거. 청소는 일주일에 두세 번 한다 그러면 어느 어느 요일, 월요일은 화분 물, 목욕탕도 매번 닦는 건 아니니까 전체적으로 한번 닦는 거는 어느 요일에 한 번. 마치 재활용하는 날 정해져 있듯이. 그런 식으로 체계화가 되어 있긴 하죠.”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기엔 정이 없어 보이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명칭을 가정관리사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딱딱해 보인다고 말하는 가사노동 30년 차 권현미 베테랑의 이야기엔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반영되어있다. 하지만 그의 가정 경영과 전문적으로 행하는 가사노동은 돈으로 환산해도 무리가 없고 전문적인 업무 명칭을 부여해도 무방할 만큼 중요하고 또한 멋지다. WSW는 이번 호에서 가사노동을 30년째 이어가고 있는 권현미 베테랑의 노동 현장에 함께했다.     베테랑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남자, 여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가정주부이자 엄마이자 아내고, 제 업무 환경은 대부분의 주부가 그렇듯이 지금 제가 생활하고 있는 가족 안에서 다 이루어집니다. 업무라 그러면 주부가 다 똑같듯이 식구들 밥 먹는 것, 건강 챙기는 것, 계절 바뀌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