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filed under: 서울여성베테랑

가정관리사, 가사노동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가정관리사, 그리고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의 만남 가정관리사로 일하기 전에는 제과점에서 판매일을 하며 생계비를 마련해왔다. 그러다 우연히 굿모닝안산 소식지에서 한 달에 77만 원을 벌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알게 되어 지원하였고, 원곡동에 있는 안산여성노동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일자리의 모집은 끝났었고, 대신에 산후관리사를 모집하는 중인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이하 전가협)를 추천받았다. 산후관리사는 신생아가 있는 저소득 가정에서 산모와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한 가정에 2주간 방문하여 9시부터 5시까지 산모 식사, 아이 목욕, 아이 용품 관리, 세탁, 산모 마사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전가협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산모분과, 가사분과로 나누어 진행하는 회의와 다양한 교육에 참석하였다. 그때 받았던 가정관리사 교육, 간부 리더십 교육, 고객응대 교육 등이 가정관리사로서, 여성활동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사무장이었던 관리사가 열심히 회의와 교육에 참석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무실에서 상담업무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었다. 덕분에 1년 6개월간의 현장 경험 후 나는 연계하는 상담업무와 회원관리를 진행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의 업무는 가정관리사, 산후관리사와 고객을 매칭 하는 업무와 회의자료 및 회계를 보는 일이었고, 이러한 일들은 조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사회적 일자리에 참여하는 관리사들은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협회 회원으로서만 일하는 관리사들은 아무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고객들이 …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2018) 中 작년에 나는 펭귄어패럴에서 명자언니와 여름 한 철을 보냈다. 그때 언니는 독산동의 작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었으니 겨울 옷 작업으로 한창 바쁜 시즌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펭귄어패럴의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명자 언니는 저녁 7시 반쯤 퇴근을 해서 퀭한 눈으로 나타났다. 언니는 대우어패럴 시절 이야기, 구로동맹파업 모임 이야기, 정치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 일하는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 형부와 두 딸의 이야기,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이야기를 펭귄어패럴의 커다란 창문 앞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를 마주 보며 들려주었다. 속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 서툰 나였지만 언니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 있었다. 해가 긴 여름 저녁들. 밝았던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니의 퀭했던 눈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었다.     구로공단의 봉제공장 여공이었던 명자언니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현장에 있었다. 당시 결성된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은 그녀는 그 과정에서 조합위원장, 여성부장과 함께 구속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을 결의하게 된다. 그렇게 아픈 시절, 그녀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명자언니는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두 딸을 낳아 기르며 꽤나 안정된 …

우리는 여전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 날엔 직장에서 늦은 밤에야 들어오는 모친의 모습이 멋있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괜시리 자랑스러워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어제 늦은 새벽에야 집에 왔다며 소문내고 다녔습니다. 모친은 그런 얘기 하고 다니지 말라며 절 말렸었지만, 전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여 온 사방에 이야기하고 다녔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소위 말하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 경험한 한 기업의 인턴 생활이 제가 직장생활과 그닥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당연히 제가 죽기 전까지 매일 아침 일을 하기 위해 분주히 집을 나서고,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오고, 빨간 날 휴가를 기다리며 일과 함께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죽기 전까지 일을 한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전 이제 ‘당연히’의 자리 에 ‘여전히’를 세우고 제가 훗날에도 여전히 일하고 있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의미하는 We are Still Working(이하WSW)는 제게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하여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입니다. WSW는 오랫동안 일을 해오고 있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한 것인지, 남성 중심주의 노동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적합한 보장을 받고 있는지, 전문성은 왜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처럼 …

버틴 세월이 얼만데 내가 지겠어요, 이기지

“제 이름은 김혜영. 여기 청계천 세운상가에 1989년 12월달에 발을 들였고 이래 눌러앉은게 30년 되었어요.”  도심 한가운데 종로3가와 퇴계로를 가로지르는 일자형 전자상가 건물, 서울의 현대도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 발전의 역사이자 주로 전자기기와 함께 남성적인 공간이라고 간주되어온 세운상가에서 청년에서 중년의 나이까지 30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여성노동자가 있다. 예술인들이 세운상가의 새로운 상가주민으로서 침투해오기 시작했던 2015년 이후에야 나 또한 그 역사를 간직한 솔다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30년 넘은 솔다방이라는 공간에 매료되었지만, 곧 지금까지 30년 넘게 솔다방 한 자리를 지켜온 김혜영 사장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베테랑 김혜영 사장의 30년 솔다방 생존기라고나 할까. 김혜영 사장님은 20대 때 솔다방에 우연히 갔다가 단발머리에 큰 눈이 밤톨처럼 야무졌다고 해서 (양엄마로 부르는) 전 사장님에게 간택당해 다방 운영을 시작했고, 결국 가게를 인수하게 된 강단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물장사라는 편견과 더불어 수많은 남성적 폭력들과도 마주쳐야 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특별히 노동자이자 여성베테랑으로서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처음에는 찻잔도 들 줄 몰랐어요 -처음 사장님이 솔다방에 오셨던 당시에는 어떤 역할로 시작하신 건가요.   옛날에는 이거(찻잔) 들 줄도 모르고 이제 카운터. 카운터만. (양엄마로 불렀던 당시 사장이) 너는 계산만 잘하면 된다고 그래가 이건 들 줄도 몰랐지. 그 때는 아침에 주방언니가 따로 있었고, 수금사원도 …

보험왕을 찾아서

 그는 보험회사 재직 시절 받았던 앨범과 상장을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여왕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어려움이 있었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보험회사의 원리’로 일을 했다. 서른 살의 어느 날 아는 언니들, ‘멋있게 생긴 사람들’이 찾아왔다. 애기 데리고 다녀도 괜찮다며 가 보기만 하자고 했다. 그렇게 따라간 곳에서는 당시 귀했던 설탕이나 비누를 주었다. 만날 얻어 먹기만 하다 거절할 수 없어 보험 일에 첫발을 딛게 됐고, 그렇게 한 회사를 30년 넘게 다녔다. 처음에 남편은 반대했고 시가에서도 싫은 티를 냈다. 보험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바람난 여자’ 로 보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도시는 남편의 고향이었고, 남편은 그곳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행여라도 남편에게 누가 될까 봐 ‘조심하고 살았고’, 다행히 착실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소문이 나서 칭찬 받고 재미나게 살았다.  그가 그 일을 계속했던 것은 그 일이 시간을 비교적 자유로이 쓸 수 있어 ‘누구한테도 지장을 안 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벌어 온 돈으로 세 아이를 먹이고 입혔으면서도. 그렇게 식구들 아침을 챙겨 주고, 집이 가까워 점심때면 집으로 오는 남편 끼니도 챙기며 일을 했다. 출산일이 임박해서도 불룩한 배를 안고, 뱃속의 아기에게 ‘조금만 참아 주라’ 하면서 일을 나갔다. 그러다 아기 하나를 유산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지장을 …

관계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도시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60 세운청계상가’ 4층에 자리한 솔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창틀을 따라 늘어선 화분이 생기롭다. 매일 빠짐없이 식물을 살펴보고 물을 주어야만 띨 수 있는 초록빛이 실내에 한가득이다. 김혜영 사장님이 30년 동안 세심하게 다듬은 일상의 한 마디에 들어서있는 듯했다.  견과류가 듬뿍 담긴 차에 계란 노른자가 묵직하게 떠올라 있다. 평소에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낯설기도 하지만, 구수하고 따뜻하게 입안을 데운다. 맛있는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편안한 공간, 솔다방은 이런 기본이 30년간 잘 지켜지고 있는 곳이다. 김혜영 사장님은 손님들을 위한 차를 만들고, 노후한 시설을 정비하며 공간을 관리한다. 솔다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맛’에 대해 말하는 사장님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내려온 게 커피도 중요하지만 나는 쌍화차. 그걸 나름대로 잘 하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어요. 비법? (웃음) 그냥 한약재로 10가지 넣고, 견과류 이것저것 많이 넣고 그냥 하면 어르신들이 오시면 너무 잘 좋다고 많이 칭찬하고 그래서 거기서 조금 힘을 얻는 것 같더라고.   정확한 비율을 계량하기 위해 30년 전, 주방 언니가 개조했다는 숟가락은 지금도 솔다방 커피의 맛을 보장하는 중요한 도구다. 솔다방의 커피맛이 입맛에 딱이라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대림상가 부근으로 이어지는 청계상가의 3층 보행데크에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여러 카페가 들어서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