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4호 | 정지혜

예술계 프리랜서 노동자이자 비혼 여성인 저는 프리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점점 건강을 잃어갔고 가난과 분투하느라 나의 몸이 보내는 신호는 뒷전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암이라는 질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중증질환들이 그렇듯 암은 오랜 집중치료와 요양을 필요로 합니다. 중증질환에 대한 국민보험의 혜택도 도움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보험을 들어둔 덕에 돌봄을 위해 가족들의 희생을 덜 수 있는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병실은 아니었지만 오랜 입원 기간 동안 간병인의 일들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4호 | 김금옥

이번 호에서는 우리 주변에 늘 있고 아주 중요한 노동이지만 주변화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질병과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의 일이라 저평가받는 돌봄노동과 아픈 여성의 노동의 문제도 결국 신자유주의적인 정상성의 기준을 수행하지 못한 개개인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게 만들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건강하기 어려운 사회는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힘든 현실에 대한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4호 | 조한진희(반다)

게다가 여성이 아플 때 이런 현실은 심화된다. 건강한 몸일지라도, 여성 노동자가 직장을 잃으면 더욱 별것 아닌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먹여 살려주면 되는 존재고, 남편이나 아버지인 남성 노동자 대신 직장을 잃어줘야 하는 존재다. 심지어 1인 가구 여성의 경우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나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쉽게 해고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먹여 살려줄 가족이나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서, 유일한 생계 부양자가 본인이라는 사실은 삭제된다. 이런 현실이니, 아픈 여성의 해고는 더욱 쉽고, 아픈 여성이 직장을 구하려고 할 때의 절실함도 마찬가지로 삭제된다.

4호 | 신소우주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노동의 철학’이라. 늘 그랬듯이 명자언니는 나를 어딘가로 이끄는 ‘단서’를 던져줬다. 나는 종종 언니와 사람들에게 ‘명자언니는 저의 페르소나예요.’ 라고 말하곤 한다. 대화를 통해 언니가 던져주는 ‘단서’들은 내가 살아가며 작업을 이어나가는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노동의 철학」이라는 책의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상상만 하기엔 그 이름이 너무나도 거룩했다. 이 책을 꼭 구해서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저길 뒤지다 어느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노란색 표지가 선명한 「노동의 철학」(광민사 엮음,1980)을 발견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한 권의 책은 그렇게 내 앞에 펼쳐졌다. 내가 태어난 해에 출판된 이 책은 딱 나만큼 나이를 먹은 동갑내기 친구였다. 처음 만났지만 명자언니의 기억이 통로가 되어 오래 전부터 곁에 두고 지내던 듯 친근했다. 그렇게 나는 「노동의 철학」을 또박또박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놀라웠다. 40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진보적이며 때로는 그 진보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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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시작되는 노동의 이야기
[4호] 에디토리얼

나에게서 시작되는 노동의 이야기

이번 4호에서는 지난 가사노동에 이어 다른 종류의 돌봄노동인 간병노동, 그리고 아픈 몸의 노동할 권리와 노동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질병과 치료와 그 이후의 경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민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예술계 ... 더 보기
요양보호사 경력 8년차 김금옥 베테랑
[4호] 인터뷰 – 8년차 요양보호사 김금옥 베테랑

이제는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10년 전 한국에 들어와 8년 동안 전국의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소속된 간병 협회에서 팀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김금옥 베테랑. 24시간 근무하는 특성상 바쁜 와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 영상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런데 첫번째 영상 인터뷰 이후, 김금옥 베테랑에게 꼭 해야 ... 더 보기
공단서점 가는 길
[4호] 〔기획연재〕 펭귄어패럴 대화록 #3

공단서점 가는 길

나는 명자언니에게 궁금한 것들이 참 많다. 펭귄어패럴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늦어 언니를 집에 바래다주던 길이었다. 신소우주: 명자언니, 가리봉 오거리에 있던 ‘공단서점’에서 읽었던 책 중에 제일 기억나는 책이 뭐예요? 강명자: 잉. 나는 광민사에서 ... 더 보기
아픈 몸과 노동
[4호] 특별기고

아픈 몸과 노동

아픈 몸이라서 직장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건강이 우선이지, 돈이 우선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건강도 없다. 알다시피 소득이 적을수록 많이 아프고 일찍 죽는 시대다. 가난할 수록 질병 발병률이 높고, 충분한 치료가 어려우며, 적절한 생활 관리는 더 ... 더 보기
강한 물살은 돌을 치운다
[3호] 에디토리얼

강한 물살은 돌을 치운다

돌무더기로 가득한 바다를 헤엄쳐 언젠가는 춤추고 싶어 파도를 가르는 고래들과 함께 - 흐른, 우리는 매일매일 中에서 의아할 만큼 돌무더기가 많다. 장애와 여성이 함께 놓였을 때, 이상할 만큼 자유가 제한된다. 마치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라는 전제가 제곱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근거 ... 더 보기
모두가 살만한 세상
[3호] 인터뷰 – 35년차 안마사 여환숙 베테랑

모두가 살만한 세상

마땅한 것들이 있다. 시각장애인의 직업 권한 보장을 위해 특정한 직군을 그들에게 한정하는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혹자는 이에 대하여 비장애인의 직업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선 장애인의 직업적 자유 역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같은 선상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 더 보기
멈추지 않았다
[3호] 특별기고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화가를 꿈꾸며 20대가 되었다. 동생들의 숙제를 봐주고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을땐 진학도 취업도 가능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이유가 있었더라도 가족, 친지에게 면목이 없었다. 성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과 편지 주고받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래던 중 ... 더 보기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팽귄어페럴이 있는 시장의 옥상에 서있다. 왼편엔 강명자가 오른편엔 신소우주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은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있다.
[3호] 〔기획연재〕 펭귄어패럴 대화록 #2

일자박기 연습시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구로공단 ‘대우어패럴’의 여공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밟고 있는 강명자. ‘펭귄시장’이라는 낡은 상가건물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며 문화예술분야의 기획자로 활동하는 신소우주. 두 사람 각자에게 상징적인 장소로부터 이름을 따온 펭귄어패럴은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사회적인 발언을 ... 더 보기
여성의 노동, 노동의 가치 : 가사노동 다시보기
[2호] 에디토리얼

여성의 노동, 노동의 가치 : 가사노동 다시보기

WSW 2호는 성별화된 노동으로 손꼽히는 ‘가사노동’을 살펴봅니다.보통 ‘주부’ 라고 불리우는 가사노동 베테랑 권현미님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는 동시에 전문적인 직업인 ‘가정관리사’ 로 활동하고 있는 현업 돌봄노동 전문가이자 전국가사노동자협회가사, 아이돌봄, 산모 및 신생아에게 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 돌봄노동 전문가 ‘가정관리사’인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함께 일자리를 ... 더 보기
중심을 잡아주는 일, 꼭 필요한 일
[2호] 인터뷰: 가사노동 전문가 경력 30년, 권현미 베테랑

중심을 잡아주는 일, 꼭 필요한 일

“저는 매일 아침마다 퍼즐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밤에 설거지를 해서 엎어 놓고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그릇마다 뚜껑 찾아서 여기 놓고 저기 놓고 이 장에 놓고 저 아래 장에 놓고 하는 거. 청소는 일주일에 두세 번 한다 ... 더 보기
가정관리사, 가사노동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2호] 특별기고

가정관리사, 가사노동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가정관리사, 그리고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의 만남 가정관리사로 일하기 전에는 제과점에서 판매일을 하며 생계비를 마련해왔다. 그러다 우연히 굿모닝안산 소식지에서 한 달에 77만 원을 벌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알게 되어 지원하였고, 원곡동에 있는 안산여성노동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일자리의 모집은 끝났었고, 대신에 산후관리사를 ... 더 보기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2호] 〔기획연재〕 펭귄어패럴 대화록 #1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신소우주: 그런데 언니는 어떻게 봉제를 하게 되셨어요? 강명자: 옛날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면 공부시켜 준다고 해서 언니 따라 서울에 올라왔지. 이제 사십 년이 다 되어 가네. 근데 봉제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날나리가 미싱박사가 되었네. 내 스스로 자칭 미싱박사야. 신소우주: 저 내년에 ... 더 보기
우리는 여전히 일하고 있습니다.
[창간호] 에디토리얼

우리는 여전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 날엔 직장에서 늦은 밤에야 들어오는 모친의 모습이 멋있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괜시리 자랑스러워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어제 늦은 새벽에야 집에 왔다며 소문내고 다녔습니다. 모친은 그런 얘기 하고 다니지 말라며 절 말렸었지만, 전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여 온 ... 더 보기
버틴 세월이 얼만데 내가 지겠어요, 이기지
[창간호] 인터뷰 : 솔다방 김혜영 베테랑

버틴 세월이 얼만데 내가 지겠어요, 이기지

“제 이름은 김혜영. 여기 청계천 세운상가에 1989년 12월달에 발을 들였고 이래 눌러앉은게 30년 되었어요.”  도심 한가운데 종로3가와 퇴계로를 가로지르는 일자형 전자상가 건물, 서울의 현대도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 발전의 역사이자 주로 전자기기와 함께 남성적인 공간이라고 간주되어온 세운상가에서 청년에서 중년의 나이까지 ... 더 보기
보험왕을 찾아서
[창간호] 특별기고

보험왕을 찾아서

 그는 보험회사 재직 시절 받았던 앨범과 상장을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여왕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어려움이 있었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보험회사의 원리’로 일을 했다. 서른 살의 어느 날 아는 언니들, ‘멋있게 생긴 사람들’이 찾아왔다. 애기 데리고 다녀도 괜찮다며 가 보기만 ... 더 보기
관계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도시 
[창간호] 특별기고

관계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도시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60 세운청계상가’ 4층에 자리한 솔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창틀을 따라 늘어선 화분이 생기롭다. 매일 빠짐없이 식물을 살펴보고 물을 주어야만 띨 수 있는 초록빛이 실내에 한가득이다. 김혜영 사장님이 30년 동안 세심하게 다듬은 일상의 한 마디에 들어서있는 듯했다.  견과류가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