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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특별기고

관계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도시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60 세운청계상가’ 4층에 자리한 솔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창틀을 따라 늘어선 화분이 생기롭다. 매일 빠짐없이 식물을 살펴보고 물을 주어야만 띨 수 있는 초록빛이 실내에 한가득이다. 김혜영 사장님이 30년 동안 세심하게 다듬은 일상의 한 마디에 들어서있는 듯했다. 

견과류가 듬뿍 담긴 차에 계란 노른자가 묵직하게 떠올라 있다. 평소에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낯설기도 하지만, 구수하고 따뜻하게 입안을 데운다. 맛있는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편안한 공간, 솔다방은 이런 기본이 30년간 잘 지켜지고 있는 곳이다.

김혜영 사장님은 손님들을 위한 차를 만들고, 노후한 시설을 정비하며 공간을 관리한다. 솔다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맛’에 대해 말하는 사장님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내려온 게 커피도 중요하지만 나는 쌍화차. 그걸 나름대로 잘 하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어요. 비법? (웃음) 그냥 한약재로 10가지 넣고, 견과류 이것저것 많이 넣고 그냥 하면 어르신들이 오시면 너무 잘 좋다고 많이 칭찬하고 그래서 거기서 조금 힘을 얻는 것 같더라고.

 

정확한 비율을 계량하기 위해 30년 전, 주방 언니가 개조했다는 숟가락은 지금도 솔다방 커피의 맛을 보장하는 중요한 도구다. 솔다방의 커피맛이 입맛에 딱이라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대림상가 부근으로 이어지는 청계상가의 3층 보행데크에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여러 카페가 들어서있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등 미국 또는 유럽식 커피, 샌드위치나 케이크 등의 베이커리 메뉴는 ‘카페’를 일상의 ‘투어’ 장소로 소비하는 나와 같은 세대에게 익숙한 먹잇감이다. #해쉬태그를 달고 개인 sns에 게시되며 공간의 맛과 이미지는 사용자가 의도한 맥락에 맞추어 재현된다. 어느 카페이고 음식들은 비슷한 포즈로 사진찍혀 맛 품평과 함께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된다.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공간과의 관계 맺기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에게 ‘사랑방’같은 솔다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혜영 사장님의 바람이 의미 있다고 느껴진 이유는 뭘까. 솔다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업적인 관계 너머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손님으로 찾아오지만, 맛있는 음식을 사례받고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거듭나기도 한다.사장님이 어머님 상을 치렀다는 소식을 누군가를 통해 들은 단골 손님이 못 찾아가서 미안하다며 위로의 말과 함께 부조를 전했다고 한다. 그걸 본 또 다른 손님이 친구들의 쌍화차값을 계산하면서 김혜영 사장님에게 말씀을 건넸다.

 

옆에서 들으니 안 좋은 일을 당한 것 같은데,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니까, 내 성의니까 받으라면서 봉투를 주는 거예요. 얼마나, 세상에, 너무 감동인 거야. 돈이 적고 많고를 떠나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갔는데. 그 손님이 을지로3가 어디에 계신대. 딴 친구분들도 너무 좋다고, 연세 드신 분이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편안한 데가 잘 없잖아. ‘시간 날 때마다 잘 다닐게. 열심히 하고 있어.’ 어른들은 이런 공간을 좋아해.

 

마음을 다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은 사장님이 이곳을 오래도록 지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방이라 하는 것 자체는 사랑방 역할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시는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또, 나이가 어느 정도 되니까 친구들도 찾아와줘서 고맙고 오랫동안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이대로 젊음이 유지된다면 가고싶은데 그건 아니잖아요. 어느 시기가 되면 나도 이제 물러나야겠지.

 

‘사랑방’이라는 다방의 본분을 다하는 공간, 그것을 필요로하는 손님들이 만나 지금의 ‘솔다방’을 미래의 유산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발길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방문은 이 공간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공간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형상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매개로 한 관계를 보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세운상가를 둘러싼 일대에서 보존이란 말은 무색하게 느껴진다. 

청계상가의 옆자리에 위치한 제조업 골목은 서울시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라는 도심재개발 사업지로 지정, 시행사의 퇴거 작업과 철거로 그 많던 소규모 제조업체의 자리가 사라졌다. 청계상가의 데크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3구역은 텅 비어버렸다. 분양 광고에 따르면 ‘세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아파트가 이 자리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이다.  시행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소규모 제조업체가 들어선 골목으로 펜스의 범위를 넓혔다. 펜스 바로 옆에서 여전히 작업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불안과 항의가 커지는 건 당연했다. 손님들의 통행이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40~50년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를 제공하는 사장님들의 지속적인 관계는 사업장이 지금의 그 자리에서 숨쉬었기에 가능했다. 시행사의 압박으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작업장이 다시 청계천·을지로로 돌아오는 이유 또한, 이곳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제조 및 손님들과의 관계를 대체할 곳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 뭐할 거여. 돈도 벌고 멋있는 작가님들하고 얘기도 나누고. 이렇게 찾으려 해도 못 찾아요. (…) 가게 나오면 너무 행복하고 얼마나 좋아. 때로는 힘도 들겠지만은 나한테 행복을 주고, 이 가게가 나의 보물이고 모든 것을 내 인생을 다 바쳤기 때문에 더 열심히 가꾸고 싶고 그래요.

 

89년 12월에 처음 일하기 시작해  2년간 함께 일했던 ‘주방 언니’의 나쁜 손버릇 탓에 비는 돈을 사비로 채워야 했고,  또 당시 외상으로 담배를 사 피우던 손님들 탓에, 담배 외상값을 사장님이 청산해야 했다. 난폭한 구애행위를 일방적으로 일삼는 남자 손님들의 행패에 대응하느라 ‘진짜 말도 못’하게 애태우고 줄행랑친 날들이 30년의 시간을 이루는 줄기처럼 자라 있다. 그 세월이 온전할 때 자기 삶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김혜영 사장님에게서 발견한다. 그 메시지 만으로도 개인이 도시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노동의 가치를 도시가 지켜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이제는 다 이겨 내가. 나이가 있는데, 버틴 세월이 얼만데. 내가 지겠어요? 이기지.

 

 

지난 2월 19일, 시행사가 공사를 철회하지 않자 청계천비상대책위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이에 감사 청구를 예고하며 기자 회견을 열고 을지로 일대를 행진했다. 겉으로 보기에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파헤쳐지고 있지만, 이 파괴를 막기 위한 움직임 역시나 시급하고 맹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오는 10월 12일은 두 번째 <메이드 인 을지로> 행사가 펼쳐진다. 청계천 및 을지로 지역의 소상공인과 제조업 장인들의 제작품들을 소개하고 판매함으로써 지역의 활기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서 현장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글: 나하

2019년 1월부터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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