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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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특별기고

멈추지 않았다

무대의 가장 앞쪽엔 한 명의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오른쪽 상단을 바라보고 있다. 뒤에는 두명의 여성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뒷쪽을 보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한 명의 여성이 서있다. 그들의 휠체어에는 그들이 힘을 더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피켓이 걸려있다.

극단 춤추는허리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선생님, 화가를 꿈꾸며 20대가 되었다. 동생들의 숙제를 봐주고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을땐 진학도 취업도 가능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이유가 있었더라도 가족, 친지에게 면목이 없었다. 성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과 편지 주고받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래던 중 동네에 부업거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죽 조각을 이어붙이고 잘라내는 알바였다. 간단한 설명과 시연을 통과하고 첫 일감을 받아 신나게 작업 했었다. 그렇게 첫 알바로 생긴 돈은 동생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주는데 썼다. 큰 기쁨이었다. 이후 한복집 근무, 숙식 가능한 한복학원 수료 후 다시 한복집 근무하며 순복음 신학원 수료, 신앙잡지사 삽화그리기, 한복그림 그리기 알바, 청바지제조 공장, 개척교회 벽화 그리기, 컴퓨터학원 텔레마케터를 하며 쉬지 않고 9년이 채워졌다.

결혼하며 전업주부로 13년째 되던 해 장애여성공감 부설 극단 춤추는허리에 발을 들였다. 그 즈음 43년의 삶을 돌아보며 분명히 보람이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나의 내면에서 찾으려했고 느리고 게으른 탓에 뭔가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변화의 계기를 찾던 시기였다. 마침 춤추는허리의 정기공연 한 달 여를 남기고 기존 배우의 갑작스런 개인 사유로 공석이 생겼고 장여여성공감의 1기 장애여성학교 퀼트반 회원이었던 내게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부담과 호기심을 오가다 출연 제안을 거절했을 때 삼고초려 못지않은 연출자의 간곡한 설득에 감동해서 DJ라는 제법 큰 역할로 첫 무대에 올랐었다.

배우들과 연습하며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부딪혔을 때, 사소한 사안이라도 조직 안에서 협업으로 조율되고 진행되었을 때, 사람들을 마주한 내 몸이 움직이고 소리 내며 의외로 약속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 통장에 출연료가 입금 되었을 때, 주변의 지지와 인정을 받았을 때 묘한 희열을 느꼈었다.

이후 활동보조사, ○○리아 점장, 15년차 시설 종사자, 초등 4학년 장애 아동, 장애아동의 엄마, 장애 학부모, 시설 거주인 지영 등 여러 삶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고 성찰하는 ‘배우’로 10년을 나름 치열하게 지나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조가 개인의 역사 특히 장애와 소수자의 삶에 어떻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존엄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장애여성으로서, 춤추는허리 배우로서 정상성에 저항하며 변화를 위한 운동에 예술운동으로 동참하면서 자긍심도 강해졌다.

공연을 연습하는 모습이다. 두명의 여성은 앞 쪽에 앉아있으며, 뒷편에는 두 명의 여성이 일어서있다. 뒷쪽 왼편에 있는 여성은 한 쪽 팔을 위로 올리고 한쪽 팔을 굽히고 있으며, 다른 여성은 양 팔을 뒤로 젖히고 있다. 앞쪽의 두 여성은 무릎을 꿇고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

극단 춤추는허리가 공연 연습을 하고있다. 사진제공 :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그런데 자긍심만으로 이 활동을 지속하기엔 매 순간 어려움에 처하는 게 현실이다. 직업란이 있는 서류에 호기롭게 연극인, 예술가를 쓰려다가 주춤해지고 지인에게 연극으로 차별적인 사회변화를 위한 공연과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대단하다거나 뭐 그렇게까지…하는 반응이 돌아올 때, “그거해서 먹고 살 수는 있어?” 라는 질문에 자존감이 쪼그라들었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전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스스로에게 더불어 사회와 국가에 질문을 던져본다.

장애의 경험을 무능이 아닌 남 다른 감각의 힘으로 삼아 정기공연, 교육연극, 강의, 퍼포먼스 등에 온 몸으로 이동하고 표현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내고 있는 활동 주체에게는 합당한 지원과 수입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노동자로 인정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받을 댓가가 얼만큼이어야 합당한지 알 수 없다. 제도적으로도 장애인의 노동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고, 기초수급대상자인 경우도 주어진 만큼 그저 감사해야 할 상황이다. 줄이고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다보면 세상과 통하던 길이 막힌다.

춤추는허리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여성 공감 안에서 단체의 기조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장애여성의 노동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활동 초기에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스스로 장애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장애 당사자로서 정상성을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장애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연출과 대화를 거듭하고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몸을 굴리며 무대 위에 불편하고 다른 내 몸을 올리면 올릴수록 장애 자체가 자원이고 동력이며 경쟁력이 이라는 정서적 안정이 깔렸다. 인정과 안정속에서도 날카롭게 현실을 직시하고 저항과 수용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춤추는허리’ 모임이 있는 날은 가족과의 일상을 뒤로하고 ‘춤추는허리’ 라는 공적 활동을 위해 보조기와 지팡이로 중심을 잡고 계단을 내려와 집을 나서서 팔을 최대한 높이 들어 올려 택시를 잡는다. 공감에 도착해서 밝게 인사를 나누고 연습실의 책상과 의자를 전동 휠체어로 밀어 제끼는 동료 옆에서 함께 공간을 확보한다. 장애유형이 다른 동료들이 서로를 채우며 차 한잔과 수다를 나눈다.

하나 둘 모두 모이면 20여분 호흡, 발성, 몸짓으로 몸을 푼다, 이번엔 집중해서 맥락에 맞는 감정, 동선, 움직임을 상상하며 대본을 읽는다. 서로의 특징과 속도를 존중하며 기다리고 제안과 조언을 얹기도 하며 1시간을 하고 10분 쉬고 다시 40여분을 이어간다. 10여 분은 다음 일정을 조율해서 결정하고 그 이후에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동료의 귀가 상황 체크해서 때로는 콜택시가 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거나 대본을 녹음해 공유하는 것, 의상 점검이나 정리, 소품 만들기 등등 상황에 따라 공식적으로 또는 자발적인 일정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현재 6명의 배우가 활동 중이다. 발달, 지체, 정신, 뇌병변 장애여성이 MT, 기획팀, 공감행사조력, 연대모임 및 집회참여. 회의, 소모임(책읽기, 절주, 1:1공부)일상연습, 공연연습, 공연, 교육연극 연습, 강의, 워크샵 등을 함께 하고 있다.

춤추는허리는 조직 내부에서부터 저항하고 비판하며, 17년간 배움과 실천이 이어지는 구성으로 유기적으로 순환되었기 때문에 내용 면에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안정적인 수익창출과 분배도 기대된다. 춤추는허리를 통해 얻은 불구의 예술을 온 몸으로 폭넓게 즐겁게 세상 속에서 활용하며 펼쳐내고 퍼 올리고싶다.

 


 

김미진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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