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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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에디토리얼

우리는 여전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 날엔 직장에서 늦은 밤에야 들어오는 모친의 모습이 멋있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괜시리 자랑스러워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어제 늦은 새벽에야 집에 왔다며 소문내고 다녔습니다. 모친은 그런 얘기 하고 다니지 말라며 절 말렸었지만, 전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여 온 사방에 이야기하고 다녔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소위 말하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 경험한 한 기업의 인턴 생활이 제가 직장생활과 그닥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당연히 제가 죽기 전까지 매일 아침 일을 하기 위해 분주히 집을 나서고,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오고, 빨간 날 휴가를 기다리며 일과 함께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죽기 전까지 일을 한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전 이제 ‘당연히’의 자리 에 ‘여전히’를 세우고 제가 훗날에도 여전히 일하고 있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의미하는 We are Still Working(이하WSW)는 제게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하여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입니다. WSW는 오랫동안 일을 해오고 있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한 것인지, 남성 중심주의 노동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적합한 보장을 받고 있는지, 전문성은 왜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지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이처럼 수많은 질문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당연히-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익숙해지는 경험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WSW는 그 첫 시작으로 서울의 여성 베테랑1을 소개합니다. 이번 창간호에서는 도시와 여성을 주목하며 을지로 세운청계상가에서 30년간 솔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혜영 사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가장 부유층들만이 세운상가에 살았던 시절과, 청계천을 덮고 있던 도로가 철거되고 을지로 일대가 ‘힙’한 동네로 주목받게 된 요즘, 그리고 또다시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청계천의 일대가 사라지는 최근까지 솔다방은 세운청계상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 자리에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하는 도시와 손님들을 한결같은 자긍심으로 맞이하고 있는 솔다방 김혜영 사장님은 오늘은 어디에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가게에 나와서 일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하는 「관계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도시」에서 김혜영 사장님의 이야기를 가로질러 서울시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사업’을 이야기합니다. 솔다방을 찾는 이들은 그 곳이 변화하지 않기를 바라곤 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솔다방이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바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솔다방의 바로 옆 세운상가 주변 일대는 보존이라는 단어가 처참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처참히 무시되는 일은 슬프게도 자주 만나게 되는 빈번한 일상이곤 합니다. 류소연은 「보험왕을 찾아서」에서 여성의 일이 얼마나 쉽게 멸시되는 지에 대하여 말합니다. 아줌마라는 말이 더 쉬이 쓰이는 “여성에게 좋은 일”,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을 바라보는 사회의 불균형한 시선과 기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사실, WSW은 저의 일 중 하나입니다. (물론 돈을 버는 것이 일의 정의라면, 일이 아니겠지만요, 하하) 일을 계속하여 지속하고 싶은 저는, WSW도 오래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딛은 WSW도 오랜 기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외치며 글을 마칩니다. WSW 창간호의 독자 여러분 WSW 많이 소문 내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우리 오래 봅시다!


글: 윤여준
책과 전시를 만듭니다. 쉬이 보이지 않거나 꼬여있는 것, 불분명하게 엉켜있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지만 필요할 때 목소리를 더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WSW를 만들고 있습니다.

 

  1. WSW는 오랫동안 일해온 여성들을 “베테랑(vétéran)”으로 칭합니다. 베테랑은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전문가, 숙련가와 동의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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