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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특별기고

보험왕을 찾아서

 그는 보험회사 재직 시절 받았던 앨범과 상장을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여왕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어려움이 있었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보험회사의 원리’로 일을 했다. 서른 살의 어느 날 아는 언니들, ‘멋있게 생긴 사람들’이 찾아왔다. 애기 데리고 다녀도 괜찮다며 가 보기만 하자고 했다. 그렇게 따라간 곳에서는 당시 귀했던 설탕이나 비누를 주었다. 만날 얻어 먹기만 하다 거절할 수 없어 보험 일에 첫발을 딛게 됐고, 그렇게 한 회사를 30년 넘게 다녔다. 처음에 남편은 반대했고 시가에서도 싫은 티를 냈다. 보험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바람난 여자’ 로 보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도시는 남편의 고향이었고, 남편은 그곳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행여라도 남편에게 누가 될까 봐 ‘조심하고 살았고’, 다행히 착실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소문이 나서 칭찬 받고 재미나게 살았다.

 그가 그 일을 계속했던 것은 그 일이 시간을 비교적 자유로이 쓸 수 있어 ‘누구한테도 지장을 안 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벌어 온 돈으로 세 아이를 먹이고 입혔으면서도. 그렇게 식구들 아침을 챙겨 주고, 집이 가까워 점심때면 집으로 오는 남편 끼니도 챙기며 일을 했다. 출산일이 임박해서도 불룩한 배를 안고, 뱃속의 아기에게 ‘조금만 참아 주라’ 하면서 일을 나갔다. 그러다 아기 하나를 유산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힘든지도 모르고 신나게’ 일을 했고 그것이 자랑스러운 평생의 업이 되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엄마라 불리는 사람들의 자서전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인터뷰한 1951년생 여성의 이야기다. 이후에 인터뷰했던 여성들 중에도 꽤 많은 이들이 보험회사에 다녔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한때 보험회사에 다녔다. 출산과 육아로 대학교 강사 자리를 잃고 난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보험회사에 다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방에 널브러져 잠에 빠져 있었다. 스타킹과 수트를 입은 채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낯선 모습에 나는 엄마를 깨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직종들은 일반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여자들이나 하는’ 많은 직업들이 전문적인 기술이나 숙련도가 필요없는 쉬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직종은 대개 저임금에 고강도 노동이 요구되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여성의 일은 여성의 일이기에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받는다. 생계 부양은 남성의 일로 여겨지고, 여성의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용돈벌이로 치부되곤 한다. 여성 노동자는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력이다.

 나의 엄마가 아빠에게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을 때 아빠의 대꾸가 지금도 어조까지 선명히 떠오른다. “그러니까, 보험 아줌마 말이지?” 그 말 안에는 분명한 경멸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출근하던 사무실에 따라간 내게 잘해 주었던, 수더분한 엄마의 동료들, 무언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보험 아줌마’라는 다섯 글자로 더없는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분명하게 알았으리라. 그렇기에 아빠의 그 한 마디는 내 기억 안에 선명하게 들어와 박혔다.

 과거 보험모집인이라 불렸던 보험설계사는, 노력에 따라 성공 신화를 쓸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을 가진 직종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멸시된다. 그 멸시의 배경에는 원래 그것이 여성들의 일이었다는 사실이 있다. 한국의 보험업계는 수많은 ‘보험 아줌마’들의 노동에 힘입어 성장했다. 윤경자의 연구1에 의하면, 여성 보험 설계사들은 압축적 성장을 위한 보험사의 영업전략 수행 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자였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보험 아줌마 이미지는 세계화라는 변화의 시기에 여성을 퇴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1990년대까지도 보험 가입은 집안의 수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전망을 만드는 일이었기에 여성의 영역, 즉 돌봄의 영역에 속했다. 회사의 규모 확대를 필요로 하던 산업화 시기, 보험회사들은 여성 인맥을 동원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여성 보험모집인들, 특히 주부들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노동력은 저임금으로 쉽게 확보가 가능했고, 이 또한 그들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에도 지점장이나 부지점장들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남성들로 채워졌다는 점을 볼 때, 업계는 분명하게 성별화·계급화되어 있었다.

 산업화 시기를 지나 우리 사회도 신자유주의 시장질서 속에 편입되어 감에 따라, 재무설계사 또는 자산관리사라는 이름을 달고 전문가의 얼굴을 한 남성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자본의 얼굴이 되어 투자와 자산관리로 포장한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금융권 회사가 대졸 취업준비생들의 취업 희망 1순위인 와중에도 보험회사 영업 직무는 여전히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남성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전망 없는 일자리로 여겨진다. 그 자리를 다시 여성들, 그 중에서도 더 적은 자원을 가진 중년 여성들이 채운다.

 보험왕이고 보험 아줌마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누군가는 평생의 업으로 삼고 그 자리를 지켰고, 더 많은 여성들은 가족 부양을 위해 잠시 발을 들였었다(그 자리를 떠나 또다른 일을 했지만). 일하는 여성은 그 이전에 무엇보다 엄마여야만 하고, 언제나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니까. 어쨌든 계속해서 여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통터치해 가며 자발적으로 유연한 노동력을 수급하며 일을 해 오는 동안, 그 공은 남성 고학력 노동자들의 것으로 돌아갔다. 일이 그렇게 되어 갈 줄을 그 많은 보험왕들은 알았을까, 알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까. 누가 알아 줄까? 여성의 일은 여성의 일인 채로 멸시되고, 전문가의 얼굴을 한 남성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굳건히 지킨다. 슬프게도 자랑스러운 ‘보험왕’. 내가 아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엄마의 자리로 돌아간, ‘아줌마’라 불리는, 그 많은 이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류소연

출판사 허스토리,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대표. 책방과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는 반려자 승리, 두 마리 고양이 달리, 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행위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1. 「금융보험업의 세계화와 여성노동 이미지의 정치경제학」,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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