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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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인터뷰 : 솔다방 김혜영 베테랑

버틴 세월이 얼만데 내가 지겠어요, 이기지

“제 이름은 김혜영. 여기 청계천 세운상가에 1989년 12월달에 발을 들였고 이래 눌러앉은게 30년 되었어요.”

 도심 한가운데 종로3가와 퇴계로를 가로지르는 일자형 전자상가 건물, 서울의 현대도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 발전의 역사이자 주로 전자기기와 함께 남성적인 공간이라고 간주되어온 세운상가에서 청년에서 중년의 나이까지 30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여성노동자가 있다. 예술인들이 세운상가의 새로운 상가주민으로서 침투해오기 시작했던 2015년 이후에야 나 또한 그 역사를 간직한 솔다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30년 넘은 솔다방이라는 공간에 매료되었지만, 곧 지금까지 30년 넘게 솔다방 한 자리를 지켜온 김혜영 사장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베테랑 김혜영 사장의 30년 솔다방 생존기라고나 할까. 김혜영 사장님은 20대 때 솔다방에 우연히 갔다가 단발머리에 큰 눈이 밤톨처럼 야무졌다고 해서 (양엄마로 부르는) 전 사장님에게 간택당해 다방 운영을 시작했고, 결국 가게를 인수하게 된 강단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물장사라는 편견과 더불어 수많은 남성적 폭력들과도 마주쳐야 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특별히 노동자이자 여성베테랑으로서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처음에는 찻잔도 들 줄 몰랐어요

-처음 사장님이 솔다방에 오셨던 당시에는 어떤 역할로 시작하신 건가요. 

 옛날에는 이거(찻잔) 들 줄도 모르고 이제 카운터. 카운터만. (양엄마로 불렀던 당시 사장이) 너는 계산만 잘하면 된다고 그래가 이건 들 줄도 몰랐지. 그 때는 아침에 주방언니가 따로 있었고, 수금사원도 따로 있고 배달원은 한 대여섯 명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배달을 갖다주면 오후에 수금하러 다니고 그 정도로 엄청 바쁜 시기,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었어요. 아침에 (가게에) 나오면 손님이 그냥 (몰려와서) 아휴… 또 그 당시에는 담배까지 다 외상을 끊어서 담뱃값도 내가 한 400만원 물었나봐. 아휴… 안 좋아 안 좋아. 외상값 떼어 먹고 가는 사람도 많았고.

세운청계상가에 위치한 솔다방.

-처음 오셨을 때 여기 좀 무섭다고 하셨잖아요.

 그 당시는 여기 상가가 우범지대. (성인용)테이프 그런 것도 있고, 요 주위에 뱀장사 (하는 사람), 바둑 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데 보면 바둑 끝나고 -내가 그 환경을 너무 잘 알아.- 돈 내기를 하면 절대 진 사람은 그냥 못 가. 우리 가게로 와서 (진 사람에게) 어쨌든 돈을 다 받아내지. 울기도 많이 하고 오죽하면 경찰까지 부르고 사람들.. 아… 진짜 많이 힘들었어. 저녁 때 오후 대여섯 시 되면 문닫으려고 많이 애를 쓰고. 아… 무서웠어. 

-무서운 것 때문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셨겠어요.

 먹고 사는게 힘든 건 절대 아냐. 나는 사람한테 너무 부대껴서 힘들었지. 그리고 주방언니고 수금사원이고 거의가 나이가 나보다 많았어요. 주방언니는 띠동갑, 그리고 수금사원 언니는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데 내가 어리다 보니까 갖고 노는거야.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힘들었고 그 당시에는 (휴대)전화기가 없는 상태에 일반 전화로 (일을) 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몇 다시 몇, 몇 다시 몇 호라고 이러면서 두 대 세 대로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전화 받을 줄도 몰라서 무지 제가 당황도 하고. 일주일만에 제가 (그만 두고) 가려고 하는데 그 엄마가 얼마나 저를 잡고 여기서 한 번 있어봐라 있어봐라 이래가지고. 이 일 하면서 일 년 만에 엄마가 ‘네가 (운영) 해라.’ 이렇게 된거야. 지금까지 내 청춘을 여기 다 바쳤어요. 

그만 둘 생각을 했는데도 그래도 내가 가게 문을 그냥 닫고 있으면 안되지 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애쓰고... 이제 버틴 세월이 얼만데 내가 지겠어요, 이기지. 

그 때는 그래도 (일하는 직원이) 나간다고 그러면 사람 구하는게 너무 힘드니까 어쨌든간에 그 쪽 편에 서가지고 내 맘대로 못하고 그 주방언니가 나보다 오래되고 그런 부분에 대해 잘 아니까 주방언니 잡으려고 많이 애를 쓰고 주방언니 얘기에 많이 따랐지. 이제 내 맘대로 한 지가 한 10년 가까이 되나봐요. 이제 지금은 너무 좋아. 조금 덜 벌면 덜 버는대로 너무 편하고. 저녁에도 늦도록 손님 있으면 좋겠지만 없거나 또 어디 가야되면 손님한테 미리 양해도 구해서 갈 수 있는 상황도 만들고. 사실은 더 편하고 좋아요. 식구가 많다고 해서 규모가 크지마는 실속은 별로 없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좋고 지금이 행복해요. 일이 있다는 그 자체가.

단발머리를 오래도록 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지만, 솔다방을 잘 지켜오고 나서는 사람들이 보물이 된 거네요.

 사람은 첫 이미지가 중요한 거야. 첫 만남의 이미지가.

내가 우리 할머니, 양엄마를 만났을 때, 좀 흐리멍텅하고 사람이 물에 물탄 성격 같으면, 그 엄마가 이 큰가게 나한테 쉽지 안 주지. 그 당시에 나보고 하도 야무지게 생겨서 주변사람들이 밤톨이라고 불렀어. 밤이 딱딱하잖아. 밤톨이, 도토리라고 별명을 붙여줬어. 그 엄마가를 나를 야무지게 봤기 때문에. 

지금도 생머리이지만 그 당시에는 완전히 단발 생머리였어. 난 왠지 파마머리를 하면 손질도 못하고 내 자신이 그걸 못 받아들이겠더라고. 하도 생머리를 오래도록 해서 그런지. 그리고 또 ‘생머리집’ 이러면 이 상가에서 그 당시에는 솔다방으로 인식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못생겨도 이 스타일로 고집하고 가렵니다. 

그리고 내가 조카가 있다고 했잖아요. 조카가 이모는 지금 봐서는 칠십까지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해, 얘 이놈아, 무슨 70이냐 내가 그랬어. 근데 지금 봐서는 70은 할 거 같아요, 이러는데 그래서 열심히 운동하려고 애를 쓰고. 또 시간이 되면 아침에 출근도 걸어서 하고 퇴근도 걸어서하려고 애를 써요. 

 

솔다방은 오래된 다방이라 좋다고 해요

잡기 좋게 전기테이프를 감아 만든 솔다방만의 티스푼

-솔다방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을 소개해주세요. 

 (전기테이프가 뚱뚱하게 감겨있고 휘어있어 잡기 좋게 만든 티스푼을 보여주시며)그래서 제가 이걸 갖고 왔어요. (일동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이게 뭔가 하면, 우리 주방언니가 만들었는데, 이 티스푼을 커피 한 스푼 (떠서) 커피를 타면 (양이) 딱 맞아요. 이게 길이가 짧아서 (전기테이프로) 엮은거야. 그래서 옛날부터 주방언니가 이걸 쓰고 나도 (지금까지) 이걸 쓰고 있걸랑요. 이걸로 한스푼 프림 타고 하면 커피 맛이 딱이야. 그래서 이게 우리집의 보물.

 뭐 잘 해놓은건 특별히 없고 이런 소파같은게 너무 오래돼서 천이었거든요. 오래 쓰니까 (천이) 떨어지잖아요.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거야. 그래서 청계천에 변화가 생기면서 이걸 사실 가게를 다 완전히 바꾸려고 했어요. 여기 통유리도 바꾸고. 근데 주위 사람들이 뭘 돈 들여서 (고치냐고) 돈이 한두푼 드냐면서 그 들여서 어느천년에 커피값을 뽑냐고 해서 그러먼 어떻게 하나 해서 여기(오래된 소파) 천갈이하고 여기(벽 페인트) 칠을 했어요. 근데 작년에 윤영미 아나운서가 일일찻집을 (우리 가게에서) 하면서 너무 오래된 다방이라 좋다고 절대 손도 대지 말라는 거야. 천이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좋다는거야. 시커멓고 죽겠는데. 그리고 또 영화 촬영을 할 때면 오래된 다방이라 우리집을 찾아와 여기서 촬영을 해요. 

솔다방의 자랑 쌍화차

-솔다방 운영하시면서 내가 남들에 비해서 잘 하는 게 있는 거 같다 라는 사장님만의 기술이 있는지

 우리는 찻집이니까 차를 이쁘게 맛나게 잘 해야하는데 지금까지 만들어온 커피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쌍화차, 그거를 나름대로 잘하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어요. 한약재를 열 가지 넣고 견과류 이것저것 많이 넣고 만들면 어르신들이 오셔서 너무 좋다고 많이 칭찬을 해요. 그래서 거기서 조금 힘을 얻는 것 같더라고. 허허.

 

주변에 베테랑 언니들 많지요

-저희는 ’베테랑’ 했을 때 사장님을 처음 떠올렸 거든요. 베테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베테랑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고. 나보다 훨씬 한 직장에서 오래도록 일하는,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한 분야에 대해서 모든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베테랑이 아닌가 싶어요. 

-을지로에 여성베테랑이 많이 계시잖아요?

여기 보면 이제, 주위에 요 밑에 다전(식당) 언니도 어쩌면 식당으로 한집에서 20년 넘게 했으니까. 식당 언니들 다 20년 넘는 사람들 많고. 요 주위에 IC 꼽는 그런 언니들도 일이십년 된 언니들도 많아.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일하는, 그런 사람들이 영원한 자기 일에 그걸 가지고, 베테랑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언니들이 많이 있지요.

-지금도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으시죠?

 아~ 그렇죠. 왜냐, 지금 이 나이에 어디 가겠어요. 지금 이렇게 또 새로운 손님들 와서 서로 많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는 얼마나 좋아. 집에 있으면 뭐할 거예요? 돈도 벌고 젊은 작가님들 멋있는 작가님들하고 얘기도 나누고… 이것보다 더 행복한 게 어디있어요. 찾으려고 해도 못 찾아요. 안그러면 친구들하고 모여서 때로는 남 험담도 할 수도 있는거고. 오늘도 어디가서 뭘 해야하나, 그런 생각을 해야하는데, 난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잖아. 가게 나오면 너무 행복하고, 얼마나 좋아. 때로는 힘도 들지만 나에게 행복을 주고, 이 가게가 나의 보물이고, 모든 것을 내 인생을 다 바쳤기 때문에 더 가꾸고 싶고 그래요. 

-여성들이 오래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자기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 나이가 지긋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좋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해야지 자기 계발해서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리잡았으면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일하는 것은 저는 찬성합니다, 나이가 조금 있더라도.

멋쟁이 손님이 솔다방에 오시더니

-솔다방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제가 얼마 전에 (친)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죠. (손님 중에) 연세가 칠십 중반은 됐을 거예요. 멋쟁이 어르신 분들이 양복을 입고 -동창 모임을 했나봐- 여섯인가 일곱 분이 오셨는데 -나도 이 상가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됐으면 애경사, 경조사 얼마나 했겠어요.- 쌍화차를 다섯 잔인가 여섯 잔인가 마시고 쌍화차 값을 계산하면서 봉투를 하나 주셨어. 두번째인가 오셔서. 두번째 오셨을 때 손님을 그렇게 많이 모시고 온거야. 그러더니 자기가 옆에서 들으니까 무슨 안좋은 일을 당한 것 같은데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 성의니까 받아라 하면서 어머, 봉투를 주는거야. 어저께도 손님을 또 많이 모시고 왔어 동창들을. 그러면서 (가게가) 너무 좋다고 나보고. 그래서 쌍화차를 대여섯 잔을 판거 아냐. 근데 그 손님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그렇지만 선생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저한테 주신 그 마음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했더니 (그 분이) “별 소릴 다 하네.” 하면서 (내) 전화번호를 가지고 가셨는데 이제 앞으로 (주변에) 계시는 동안은 자주 오실거야.

앞으로도 손님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면서

 내가 능력이 더 되면 또 다른 사람들처럼 1호 찻집, 2호 찻집을 내고 싶은데. 그거는 하나의 나의 작은 소망이고. 그냥 여기서 열심히해서 손님들하고 사랑방처럼 오손도손 좋은 이미지 가꾸면서, 마무리를 이쁘게 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및 편집. 정지혜

아픈 여성의 지속적인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아플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WSW를 통해 그 가능성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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