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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기획연재〕 펭귄어패럴 대화록 #1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신소우주: 그런데 언니는 어떻게 봉제를 하게 되셨어요?

강명자: 옛날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면 공부시켜 준다고 해서 언니 따라 서울에 올라왔지. 이제 사십 년이 다 되어 가네. 근데 봉제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날나리가 미싱박사가 되었네. 내 스스로 자칭 미싱박사야.

신소우주: 저 내년에 마흔인데 제 나이만큼 봉제를 하셨네요.

강명자: 소우야, 너는 소심해 보이는데 뭐하다가 봉제를 배우려고 하니?

신소우주: 저요? 맞아요. 언니 저 진짜 소심해요. 근데 안 그런 척하며 예술이란 것을 한다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직하게 그대로 드러나는 걸 찾게 되었어요. 그게 바로 봉제였고요. 아 그리고 어렸을 때 저희 집엔 할머니 손미싱도 있고 엄마도 부업으로 미싱을 해서 미싱이 제 장난감이었어요. 미싱은 저한테 너무 익숙한 존재예요. 근데 엄마는 일할 때 힘드셨는지 그 고생스러운 걸 왜 하냐고 그러세요. 저는 너무너무 재밌는데.

강명자: 내가 제일로 즐거워하는 것은 일감이 들어올 때, 동료들과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며 작업을 해서 완성된 옷을 펼쳤을 때가 기분이 좋지. 내가 만들었지만 ‘이 옷 참 예쁘네.’ 다리미질 싹 해서 갖고 오면 ‘내가 솜씨가 있구나.’라고 생각하지. 옛날에는 큰 공장에서 라인 작업하면서 지루하거나 짜증이 났는데 지금 일하는 곳은 소규모 공장이라 같이 일하는 친구, 언니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일하지. 나는 그런 현장이 참 좋아. 거기다가 일한 만큼 돈만 받쳐주면 더 즐거울 텐데.

–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2018) 中

작년에 나는 펭귄어패럴에서 명자언니와 여름 한 철을 보냈다. 그때 언니는 독산동의 작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었으니 겨울 옷 작업으로 한창 바쁜 시즌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펭귄어패럴의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명자 언니는 저녁 7시 반쯤 퇴근을 해서 퀭한 눈으로 나타났다. 언니는 대우어패럴 시절 이야기, 구로동맹파업 모임 이야기, 정치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 일하는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 형부와 두 딸의 이야기,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이야기를 펭귄어패럴의 커다란 창문 앞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를 마주 보며 들려주었다. 속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 서툰 나였지만 언니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 있었다. 해가 긴 여름 저녁들. 밝았던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니의 퀭했던 눈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었다.

 

팽귄어페럴의 테이블에 신소우주와 강명자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펭귄어패럴의 테이블_사진 안수연

 

구로공단의 봉제공장 여공이었던 명자언니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현장에 있었다. 당시 결성된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은 그녀는 그 과정에서 조합위원장, 여성부장과 함께 구속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을 결의하게 된다. 그렇게 아픈 시절, 그녀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명자언니는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두 딸을 낳아 기르며 꽤나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녀는 여전히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지금도 열악한 봉제 노동의 현장에서 여전히 동료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창조경제와 혁신의 시대에서 문화예술분야의 기획자로 고군분투하던 나는 2014년 봉제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봉봉시스터즈>를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다. 명자언니는 스스로를 ‘미싱박사’라 칭하며, 노동의 현장 그리고 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갖게 되는 문제의식을 통해 어떠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또 다른 여성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세대의 차이도 크지만 그렇게 다른 듯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그녀와의 격의 없는 대화는 언제나 내게 용기를 주었다.

 

다섯 명의 여성이 모자를 눌러 쓰고 같은 옷을 입고 함께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여성은 뒤로 걷고 있다. 일렬로 마치 앞으로 걷는 듯 보이지만 한 명은 뒤로 걷고 있는 것이다.

봉봉시스터즈_퍼포먼스 영상 캡쳐

 

2016년 겨울 나는 많이 아팠다. 밥 먹듯이 밤을 새우며 일했지만 그러는 사이 너덜너덜해진 나에겐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나에게 다가올 시간들이 두렵기만 했다. 나는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느 새벽, 제주의 해안도로를 걷고 있던 나는 검은 게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한동안 보지 못했던 명자언니가 떠올랐다. 언니를 처음 만났던 날. 소심한 내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언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명자언니는 먼저 말을 건넸다.

 

‘그냥 언니라고 불러. 명자언니라고.’

 

언니 특유의 경쾌한 말투와 목소리가 얼음장 같은 바닷바람 보다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 언니랑 미싱을 밟아야지. 언니랑 같이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어느 때보다 단단히 마음먹은 나는 서울로 올라와 명자언니를 생각하며 그녀와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뜨거웠던 2018년의 여름, 우리 둘은 펭귄어패럴이라는 소규모 봉제공장의 베테랑 미싱사와 초보 미싱사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니의 2016년 겨울도 많이 시리고 아팠다. 언니가 처음 봉제기술을 예술 작업으로 시도했던 때, 그 길을 터준 김선민 감독이 유방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구로공단 공장에서 일하며 공부해 영화감독이 된 그녀 역시 나처럼 언니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녀가 나와 명자언니 사이에 통로가 돼 주었던 걸까. 다행히도 언니와 나는 아팠던 시간을 잘 견뎌냈다. 그렇게 우린 한 숨을 덜어내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아주 깊은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팽귄어페럴에서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크게 웃고 있다.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펭귄어패럴의 여름 밤_사진 안수연

 

강명자: 소우야, 봉제라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신소우주: 명자언니, 미싱을 밟으면 제 마음이 천에 드러나요.

 

펭귄어패럴 대화록 #1: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펭귄어패럴 대화록 #2: 일자박기 연습시간
펭귄어패럴 대화록 #3: 공단서점 가는 길

 


신소우주

저는 펭귄어패럴의 초보 미싱사입니다. 미싱이란 저에게 예술 작업으로써의 매개인 동시에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생계의 기술입니다. 펭귄어패럴에서 매일 매일 연습시간을 보내고 한 명 한 명 개인을 만납니다. 그 시간과 만남이 맺어 준 관계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와 주고받는 대화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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