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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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기획연재〕 펭귄어패럴 대화록 #2

일자박기 연습시간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팽귄어페럴이 있는 시장의 옥상에 서있다. 왼편엔 강명자가 오른편엔 신소우주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은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구로공단 ‘대우어패럴’의 여공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밟고 있는 강명자. ‘펭귄시장’이라는 낡은 상가건물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며 문화예술분야의 기획자로 활동하는 신소우주. 두 사람 각자에게 상징적인 장소로부터 이름을 따온 펭귄어패럴은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사회적인 발언을 고민하고 협업하는 소규모 봉제공장이다.

펭귄어패럴의 운영을 시작했던 2018년 여름, 나는 공업용 미싱을 처음 밟게 되었는데 그 첫 날부터 덜컥 겁이 났다. 호기롭게 명자언니와 봉제공장의 문을 열었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공업용 미싱의 전원을 켜자마자 들려오는 묵직하고 거친 시동 소리는 그야말로 기계다웠다. “우웅.. 지잉..” 어렸을 때 집에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할머니의 손미싱이나 엄마의 가정용 미싱과는 차원이 다른 낯선 존재였다. 힘과 속도 면에서 스케일이 달랐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연습이 필요했다. 40년 경력의 미싱사인 명자언니와 호흡을 맞춰 나가려면 초보미싱사인 나에겐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는 가장 기본적인 봉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자박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봉제용어로는 본봉, 흔히 직선박기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일자박기라고 부른다. 그렇게 일자박기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싸고 부담 없는 흰색 우라(안감) 원단에 흰색 실로(잘 못 박아도 티가 나지 않도록) 매일 매일 일자박기를 연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명자언니는 그런 나를 의아하게 여겼다.

강명자: 소우야, 너는 맨날 그거만 박고 있냐.

신소우주: 연습하는 거예요. 언니처럼 미싱박사가 되고 싶어서 매일 매일 연습하는 거예요.

강명자: 그런데 일자박기를 뭘 연습까지 해야 되냐.

신소우주: 기초가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급하지 않게 꾸준히 일자박기를 연습하기로 저랑 약속했어요.

강명자: (일자박기 원단을 바라보며) 아이고 참 빼뚤빼뚤하기도 하네.

아직은 불안한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듯 빼뚤빼뚤하고 엉성한 일자박기를 명자언니에게 보일 때면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때로는 언니가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니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미싱사 강명자에게 있어 40여 년 동안 갈고 닦은 봉제의 기술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자부심이며 그것이 바로 강명자라는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쉽게 떨쳐내지 못했던 고단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생산성의 제고만 강조될 뿐 노동의 가치는 후려쳐진 단가로 매겨져 폄하되는 열악한 봉제업의 현장에서 노동자가 어떠한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충분한 연습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지난 십여 년 간 나의 시간도 그러했다. 제대로 된 기획비라는 것조차 인정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보다 새롭고 보다 변별성 있는 무언가를 세상에 내 놓아야 한다는 함정에 빠져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들을 예술이라는 허울 좋은 가치로 덮어씌우기를 반복해왔다. 그렇게 나의 과정은 생략되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준비하기 위한 나의 연습시간은 자꾸만 생략되고 있었다. 사실 일자박기 연습을 시작했던 이유는 뭔가 그럴듯한 봉제작업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음 단계를 위해 서둘러 끝낼 연습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주어진 이 연습시간은 그동안 생략된 나의 내밀한 시간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복구해 주고 있다.

두 손이 흰 천을 미싱 아래로 넣어 미싱기를 돌리고 있다. 흰 천을 일직선으로 뺴고 있는 일자박기를 하는 모습이다

일자박기 연습시간_사진 안수연

사실 펭귄어패럴은 여느 다른 봉제공장처럼 하청으로 일감을 받거나 자체적으로 상품을 제작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다. 언젠가는 눈에 보이는 생산성을 고려해야 하는 시기가 올 테지만 가능한 충분히 앞으로의 일들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의미를 지켜나가고자 한다. 또한 시스템에 가려져 희미해지고 파편화된 노동의 가치를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재발견하고 노동자 개인과 개인이 맺는 관계와 대화를 통해 그 가치를 이어나가는데 목표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놀랍게도 해가 두 번 바뀐 지금까지 나는 일자박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일자박기 원단들이 펭귄어패럴의 작업대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며 가장 놀라워하는 사람은 명자언니다.

강명자: 소우야, 너는 아직까지 이걸 하고 있냐. 정말 대단하다.

신소우주: 저번에 제가 천천히 꾸준하게 할 거라고 그랬잖아요. 언니 저 많이 늘었죠?

강명자: 그러게. 빼뚤빼뚤하더니 이렇게 일자로 잘 박았다냐. 소우 너는 일자박기를 왜 계속 하는 건데.

신소우주: 처음엔 공업용 미싱을 밟기가 무서워서 잠깐 연습만 하려고 시작했는데, 일자박기를 계속 하다보니까 그 시간이 저한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동안 제가 잃어버렸던 시간을 이어 박는 것 같았어요. 어떤 생각을 비우면 비우는 대로 어떤 생각에 집중하면 집중하는 대로. 제가 살아가는 시간들을 일자박기로 한 줄 한 줄 쌓아가고 있는 거예요.

강명자: 그게 너한테 그런 의미였구나. 그래 열심히 해봐라.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명자언니는 항상 나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 꾸준히 오랫동안 무엇을 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건네는 걱정과 격려의 말일 게다.

신소우주: 명자언니, 그동안 일하는 환경에서 언니만이 갖고 있는 어떤 방식이나 철학이 있으세요?

강명자: 나는 지금까지도 일을 못한다 이런 소리를 안 들어봤던 거 같애. 요령을 터득해서. 그렇게 터득하게 된 계기는 같이 운동했던 상정언니가 했던 말. 지금까지 그 언니를 만나면서 숱한 말을 했지만 그게 내 머리에 꽂힌 거야. 그게 뭐였냐면, 이 자본주의 사회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자본가는 오늘밤도 잠을 못자고 숱하게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렇다면 나는 그 당시에는 노동운동 했던 조합 활동가로서 조합 활동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잘할까 그랬었고. 더불어 이제는 내 삶의 전부인 미싱을 할 때 그냥 생각 없이 가르쳐 준대로만 하면은 내 기술이 아닌 남에 기술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이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좀 더 쉽게 하는 방법 빠르게 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는 거지. 사실 운동판에서는 소사장제도1라는 것들이.. 지금 현재 사회가 그렇게 굴러가고 있는데. 91년도에 그렇게 내가 작업을 첫 시도를 했을 때 욕을 엄청 먹었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을 단합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들을 왜 굳이 운동했던 네가 그 길로 가야 되느냐. 이게 하나의 옷을 만들면 가격 때문에 굉장히 강도 높은 노동을 요하는 그 속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좀 더 빠르게 하는 방법 예쁘게 하는 방법. 이런 것들을 찾아 내가 일 하는데 접목을 시켰던 거 같애. 그래서 지금도 일을 하면 나만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거지. 딱 옷이 들어오면 어떤 옷이든.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보면은 나만의 방식인거지. 처음 한 장 두 장 할 때 더디더라도 나만의 손놀림 손동작을 찾아가는. 그렇게 해야 나도 뿌듯하고 재밌고. 내가 알아서 해가는 이런 것들이 노동현장에서 하나의 철학인거고.

그동안 연습시간이란 것은 없이 수많은 현장을 맞닥뜨려야 했던 명자언니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유연하지만 단단한 태도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언니가 40여 년 간 걸어온 길은 내가 펭귄어패럴에서 스스로 터득한 방식으로 온전히 ‘일자박기 연습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강명자와 신소우주가 팽귄어페럴이 있는 시장의 옥상에 서있다. 왼편엔 강명자가 오른편엔 신소우주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은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있다.

미싱박사 강명자 X 초보미싱사 신소우주_사진 안수연

펭귄어패럴 대화록 #1: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펭귄어패럴 대화록 #2: 일자박기 연습시간
펭귄어패럴 대화록 #3: 공단서점 가는 길

 


 

신소우주

저는 펭귄어패럴의 초보 미싱사입니다. 미싱이란 저에게 예술 작업으로써의 매개인 동시에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생계의 기술입니다. 펭귄어패럴에서 매일 매일 연습시간을 보내고 한 명 한 명 개인을 만납니다. 그 시간과 만남이 맺어 준 관계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와 주고받는 대화를 기록합니다.

  1. 생산성 향상 등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회복하기 위해 생산라인이나 공정 일부를 소사장기업에 위탁하는 등의 방법으로 독립경영체제로 형성해 소규모로 경영하는 방식, 시사저널, 노동계에 ‘소사장제 주의보’, 허광준기자, 1992.12.31,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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