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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인터뷰 – 8년차 요양보호사 김금옥 베테랑

이제는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요양보호사 경력 8년차 김금옥 베테랑

10년 전 한국에 들어와 8년 동안 전국의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소속된 간병 협회에서 팀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김금옥 베테랑. 24시간 근무하는 특성상 바쁜 와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 영상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런데 첫번째 영상 인터뷰 이후, 김금옥 베테랑에게 꼭 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 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게 그만큼 자신의 노동의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또 다른 면대면 인터뷰를 통해 답변을 보충했다. 이 글은 한 번의 영상 인터뷰와 같은 질문으로 추가 인터뷰한 답변을 편집해 정리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중국에서 온 김금옥입니다. 한국 온 지 10년 되었습니다. 간병일을 한 지 8년 되었습니다. 일대일 간병부터 공동 간병까지 모두 경험했습니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온지 10년 됐어요. 처음에는 한국 일을 모르니까 식당일, 설거지부터 시작했어요. 한 반 년 해보니까 일이 많이 안 힘들더라고요. 배달집에서 설거지를 하다보니 배달이 들어올 땐 엄청 많이 들어오고 놀 땐 노는데, 노는 시간을 이용해 주방장을 많이 도와줬어요. 근데 설거지가 엄청 들어올 땐 주방장이 안 도와주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방장은 돈 많이 버는데 저는 한 달에 두 번쉬고 150만 원 받고 일을 했거든요. 근데 주방일은 돈이 많더라고요. 그럼 나도 주방일을 배워가지고 좀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귓등 너머로 많이 봤거든요. 주방일 도와주면서 바쁘다고 하고, 도와도 안주고. 나간다고 하니 그제서야 150만 원에서 180만 원으로 월급을 높여준다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나왔어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식당 일도 알바로 하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해보자. 그래서 설렁탕, 횟집도 알바 다니고 여러 가지 식당 알바를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가 횟집이 개중 쉽고 제가 또 회를 좋아하니까 맘에 들더라고요. 횟집 두 달 하니까 주방장 하라고 해서 했어요. 그렇게 일 년 하다가 계속 야간에 일을 해야 해서 좀 힘들더라고요. 친구들 만나기도 시간이 없어 바쁘고요. 그런데 친구들이 “주방일보다 간병일이 좋다. 앞으로도 좋고 장래성이 있다.” 그래서 거기도 여차저차 나왔어요.

병실 한 켠에 마련된 김금옥 베테랑의 침대와 수납공간

병실 한 켠에 마련된 김금옥 베테랑의 침대와 수납공간_김금옥 베테랑 제공

지인을 통해서 처음 간병일을 배웠는데 실습복, 신발 포함해서 실습비를 내고 일주일 동안 실습하고 일할 병실 준다고 해서 갔는데 이틀을 하고 또 다른 병실을 일하게 하는거예요. 알고보니 이틀 동안 원래 그 방을 맡았던 간병인 여사님을 이틀 쉬게 하고 나를 하게 한 거예요. 그래서 이틀이 지나고 “나도 방을 주세요.” 했더니 병원에서 이틀 더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또 이틀을 더 했어요. 근데 그렇게 6일이 됐잖아요. 그랬는데 병원에서 실습으로 하루 더 일을 해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안 돼요. 저는 가겠어요.” 라고 했죠. 일주일 동안 남을 위해 실습을 했는데 더 하라고 하니 이렇게는 못한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알고보니 친구가 한 달 실습한다고 하고 데리고 온 거였더라고요. 친구가 그 병원에서 일한 지 십 년 되어서 실장님이랑도 다 아는데 저 모르게 약속이 있었더라고요. 저는 약속대로 일주일 실습했으니 정식으로 방 안 주면 나도 나가겠다. 그래서 병원에서 나가라 해서 제 물건 다 싸서 나왔어요. 나와서 또 다른 간병하는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그 친구가 ‘5~6명 병실 간병보다 일대일 간병이 쉽다.’ 라고 해서 일대일 간병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틈틈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김금옥 베테랑

틈틈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김금옥 베테랑_김금옥 베테랑 제공

베테랑님의 하루 일과는 보통 어떻게 되시나요?

우리일이 기본적으로 새벽부터 시작하는데 오전 5시면 일어나야 돼요. 일대일로 간병을 하는 경우에는 한 사람만 보면 되니까 6~7시에만 일어나면 되는데, 저는 5~6인실 환자들을 보니까1 무조건 5시면 일어나서 창문 열어두고 장갑 끼고 준비 다 하고 하나하나 기저귀 갈고 세수시키고 그러면 7시 다 되거든요. 그럼 아침 준비하고요. 아침물 뜨러 간다, 바로 앉힌다, 아침 식사하고, 식사한 다음 양치시키고요. 30분 정도 지나면 다시 바로 눕혀놓고 그 다음에 다시 체위시켜서2 제대로 눕혀놓고. 그러고 나면 한 8시 되거든요, 8시에서 9시에 간식을 먹여요. 일반실에서는 콧줄 없이도 직접 먹는 환자 콧줄 환자 맞춰서 9시쯤 간식을 먹이고요. 먹일 때 또 일어나 앉히고, 먹이고, 돌아 눕히고 하면 9시 반 되고. 그러고 1시간 정도 있다가 또 점심 준비를 해요. 점심에 또 물 따라오고 바로 앉히고 또 점심 식사를 하고, 점심 식사도 마찬가지로 또 30분 동안 앉히고 못 움직이는 사람은 체위를 바꾸어 돌아 눕혀놓고 그러고 2시반 3시쯤 또 기저귀 갈고요. 이렇게 기저귀는 하루에 6번 갈아야 해요. 아침 전, 아침 먹고, 10시, 2시, 4시, 저녁 7시까지 해야 해요. 보통 7시면 기본생활이 끝이 나고, 기저귀 갈고 나면 7시 반 되고요. 우리 각자 생활하면 8시 반, 9시 되고요. 기본적으로 꼭 해야 하는 업무는 그렇게 매일 반복이 됩니다.

 

베테랑님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시면서 지방의 병원에서도 서울의 병원에서도 일해보신 경험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서울과 지방 병원의 근무 환경이나 업무 환경, 임금 등의 차이가 있을까요.

차이가 있어요. 여주, 광주 등 지방의 요양병원에서도 일해봤는데, 서울보다 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병원처럼 큰 병원이나 서울 요양병원같이 수도권에 있는 병원이 규율이 엄한 편이에요. 어떤 병원은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하게 해요. 나갈 때는 어디 가는지 언제까지 오는지 꼭 허락을 받고 외출을 오래 하지 못하게 해요. 거기에 비해 지방엔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그런지 단속하거나 엄한 분위기가 적고 자유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적어요. 급여는 지역의 차이라기보다는 환자에 따라 다르거나 병원에 따라 달라져요. 많은 병원을 다녀봤지만 대부분 보호자와 병원이 주는 간병비를 협회에서 정산해 수수료를 떼고 간병인에게 줘요.

환자의 발이 빠져 낙상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베테랑이 직접 과자 상자를 잘라 침대 양 옆에 보호장치를 만들었다.

환자의 발이 빠져 낙상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베테랑이 직접 과자 상자를 잘라 침대 양 옆에 보호장치를 만들었다._김금옥 베테랑 제공

외국인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어렵고 힘드셨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 많아요. 한국에 나와서 한국 사람들이 선량하고 침착하고 착하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금… 힘든 점이 있어요. 잔소리도 많고,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일대일 할 때 옆에 딱 앉아서 요것도 요래라 이렇게 눕혀라 저렇게 눕혀라… 병실이 다인실인 경우에는 환자마다 조금씩 간병해야 하는 것이 다른데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하는 걸 보면서, 간식 먹일 때 환자가 소화도 잘 안 되는데 이것저것 먹이라고 시킬 때가 많아요. 이럴 때 답답하거든. 그럴 때 우리가 “할머니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식사를 조금밖에 못 했어요.” “아니 그러니까 많이 먹여야 되지.” 내가 환자가 소화하는 걸 보니 ‘조금 뒤에 먹였으면 좋겠다.’ 하면 “아니, 그래도 가져온 건 다 먹여야 된다.” 고 요구해요. 그리고 체위한다고 옆으로 돌려놓으면 할머니 불편한데 왜 이렇게 눕혀놓았냐고 편하게 하라고 막 뭐라 그래요. 경험이 있는 전문가로서 우리의 의도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짜증 날 때도 있고요.

환자들도 특히 치매 환자들은 무조건 집에 가겠다고 하거나 자꾸 돈이 없어졌다고 그래서 보호자한테 전화를 연결해 겨우 설득시키기도 하고요. 밤에 잠을 안 주무시고 자꾸 어딜 가겠다고 침대에서 내려오고 잠시 사이에 도망가고 그런 환자는 지키기가 어려워요. 밤에도 항상 마음을 놓지 못하고 푹 자기가 힘들죠. 목욕할 때처럼 환자를 이동시켜야 할 때는 휠체어에 앉혀야 하는데 전문적으로 환자를 앉히는 방법을 따로 배워요. 배워서 하는데도 옮겨 앉힐 때 보호자들이 “어, 떨어뜨리겠다!” 하면서 무서워하고 우리 하는 것에 영 만족하지 않더라고요. 저는 게다가 덩치가 적잖아요. 그래도 70Kg 넘는 간질 환자도 다 들고 옮기는데. 하는걸 보고서 그제서야 감탄을 하더라고요. “아, 이렇게 하는구나. 안심된다.” 라고요.

그리고 교포들이다 보니 말이 조금 달라서 보호자가 못 알아들을 때가 있잖아요. 말을 잘 못 알아듣겠다고 무시하고 짜증 낼 때도 있어요. 가끔 그렇게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억울한 면이 있어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해요.

또 최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떤 병원에선 중국인 간병인들 다 내보내라 그래서 다들 그만두게 된 일이 있었어요. 물론 간병인 구하는 곳이 많으니까 다들 다른 일을 찾긴 했지만요. 그럴 땐 기분이 좋지 않아요. 대부분 계속 한국에서만 일해서 감염 위험이 높지도 않은데.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단순히 다 가난해서 한국에 일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 먹어서도 오래 일할만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들어온 경우가 많거든요.한국에서 일하려고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어능력 시험도 다 쳤고요. 그렇게 남편이 먼저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는데 한국 사람들이 안 하는 험한 일을 많이 해서 힘들다는 거예요. 숙소 하나 잡아 놓고 농사일, 노가다 같은 일을 12시간 동안 일을 시키더라고요. 처음에는 한국 오지 말라고 그랬어요. 저는 자식들 다 키우고 남편보다는 뒤늦게 한국에 왔는데 중국에서도 힘든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도 궂은일들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베테랑님은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들을 대표하는 간병인 팀장과 같은 역할도 경험해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팀장으로서의 업무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일을 하실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꼈을 때를 알려주세요.

간병인들이 연변 사람들이 많잖아요. 제가 연변 사람이다보니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협회에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시작해서 저도 팀장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내 일을 다 하고도 남의 일까지 쉴 새 없이 하는 이런 성질이 있어서 당시 가입된 협회에서 여주에 있는 요양병원 팀장으로 보내더라고요. 경력이 1년 반~2년 정도 되었을 때요. 그때가서 상황을 보니까 원래 있던 간병인들이 바빠 죽겠다, 무거워 죽겠다 힘들다, 목욕시키기 힘들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팀장이니까 그럼 기다려라 내가 도와주겠다 하거든요. 아니면 일하는 분들이 못하겠다 하고 나가게 되니 사람을 새로 구해야 해서 도와서 같이 하자 이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맡았지만 사실 팀장이 힘들어요.

요즘엔 팀장이 관리하는 사람당 만 원 정도를 표준으로 받아요. 이전에는 오히려 인력을 관리하는 인맥과 역할이 중요하니까 병원과 협회에서 급여를 더 받았는데 오히려 요즘에는 협회 단톡방이 생기고 일자리 공고 올리기가 편해지면서 관리하는 일이 줄어들어 급여도 표준이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에요.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할 때 병원이 외곽에 있어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아 전철도 없고 버스 타고도 한참을 가는 병원인데, 생일이며 잔치며 개인적으로도 휴가 나갈 일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때 맡아줄 사람을 구하는데 다들 멀다고 오질 않는 거예요. 이곳저곳 전화해서 겨우 사람을 구해와요.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이머니까 마중도 나가 데리고 오고 데리고 가며 그렇게 많이 했거든요. 그때부터 너무 멀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팀장을 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병원을 나왔어요. 우리도 요양보호사 부부거든요. 나가려면 같이 나가야 하잖아요. 그 전엔 남편이랑 다른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다. 6~7년째 따로 일하는데 따로 있지 말고 같은 병원에 일하자고 해서 지금 서울의 병원에 남편과 같이 일하게 되었어요. 병원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원래는 팀장이 아니고 일반 간병인으로 왔는데 팀장을 하던 분이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팀장 경험이 있으니 한 달 정도 간병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며 병원 실장님을 도와줬어요. 결국은 실장님이 간병 팀장을 시키니 하고는 있는데 사실 팀장 하는 게 힘들고 책임감을 덜고 조금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내가 도와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탄하고 하면 나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힘들어도 도와주고, 서로 맛있는 것 나눠 먹고 잘 조직이 될 때 모두 기분도 좋아지고요. 어쨌든 타국에서 오니까 교포끼리 서로 도와주고 양보하고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제일 감동하고 나도 그분들 좋아하고요. 지금 일하는 이 병원에 간병인이 19명이거든요. 그중에 16명이 제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람은 힘들어 나가고, 어떤 사람은 만족하고 일하다 나가고 하지만 하여간 내가 데려온 사람들은 내가 책임지고 같이 해주고 있다는 마음으로 잘 되어가고 있어요.

간병인 침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붙여진 간병인이 지켜야 할 수칙

간병인 침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붙여진 간병인이 지켜야 할 수칙 _김금옥 베테랑 제공

외국인 여성 노동자로서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 꼭 필요한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있는데, 실제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아예 제안 조차 안 하고 있어요. 힘든 일이 많으니 급여를 올려야 한다고 얘기를 하고 싶은데 병원에 얘기를 해야할 지 가입한 간병인 협회에 얘기를 해야할 지 어디에 얘기해야 할 지 알 수가 없고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얘기를 못 하고 있었어요.

환자가 사고가 나거나 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협회를 통해 든 보험으로 처리를 하고 경우에 따라 비용이 크면 협회와 병원도 같이 보상처리를 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사람을 들고 내려야 하고 몸을 많이 쓰는 일이니까 아플 때가 있는데 의료보험은 들어져 있지만 산재같은 건 받지 못하고 일을 쉬고 알아서 치료를 해야 해요. 옛날에 지방에서 간병일을 할 때는 우리가 감기가 걸렸거나 뭐가 돋았거나 하면 병원 실장님이 개인적으로 데려가 주사도 놔주고 하는 데가 좀 있었는데, 서울에서는 그런 건 없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병원은 4대 보험도 들어주고 퇴직금도 주기도 한다더라고요. 그런 데는 교포들이 들어가기 힘들고요. 같은 병원 안에서도 몇 사람만 해당되더라고요.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하면 4대 보험이 가능하고 식당도 어떤 곳은 4대 보험이 가능하잖아요. 간병인들도 한사람이 5~6년씩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5년 이상 일하는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서부터 좀 경력을 인정해서 경력에 따라 1~2년은 보장되는 제도가 어떻다, 더 잘하면 어떻다, 이런 제도가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분들이 만족스럽게 같은 곳에서 일을 오래 했으면 그런 것 좀 되었으면 하는데, 말은 해보자 해도 별로 될 것 같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고 있어요.

어떤 때는 내가 팀장 일을 하니까 협회를 통해 어떤 병원에 간병인 몇 명을 소개해서 일하게 되었는데 병원이 어려워 임금이 밀리고 못 받게 된 경우가 있었어요. 팀장이니까 연락이 다 오잖아요. 그래서 그때 내가 급여를 못 받은 사람들을 모아서 노동부에 신고도 하고 협회 도움 없이 나라 통해서 노무사를 고용해서 1~2년 뒤에나 겨우 다 받는 경우도 많고요. 간병인 협회는 이런 문제가 생겨도 병원이랑 문제가 생기면 다른 협회에서 사람을 불러버리니까 병원 눈치를 보고 제대로 항의를 하지 못해요.

 

주변에 알고계시는 일을 잘하는 여성베테랑 분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소개해주실 분이 있으실까요?

일을 잘하는 분들 많죠. 우리 병원에서 일하던 간병인 김송금. 그 분도 팀장 역할 하셨고, 저와 7년 전부터 알던 분인데, 정말 진실해요. 정말 잘해요. 지금 있는 병원의 다른 간병인 분들도 우리 병원을 자기 집처럼 깨끗하게 꾸리고 환자 잘 보고 그런 게 좋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기쁘고 좋죠.

 

이 일을 하고 계신 것에 만족하시나요?

예, 만족해요. 저도 부모님 모시다 돌아가셨지만요, 이렇게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돌아가셨거든요. 그게 유감이라 어르신들을 그래서 병원에서 어르신들을 자기 부모처럼 대해야겠다 싶어서 더 잘하게 됩니다.

 

일을 언제까지 하고 싶으신지요?

아마 칠팔십까지 하고 싶은 생각 있는데 몰라요. 어떻게 될지… (몸이 따라줄 때까지 하고 싶으신 거죠?) 몸도 몸이지만 우리도 자식들이 있잖아요. 아들은 중국에서 사업하고 있고 딸은 여기 와있지만 이제 손자가 두 살이에요. 5살정도 까지는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그 이후로는 부모도 벌어야 하잖아요. 할머니라 애들을 봐줘야 하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언제 다시 중국에 가야하나 고려
중이에요.

 


인터뷰 정리 정지혜
촬영 및 영상편집 황유정

  1. 요양보호사들이 일하는 요양병원 환자들은 거동이 어려운 노인중증환자들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2. 거동이 어려운 환자는 욕창 예방을 위해 간병인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체위를 변경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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