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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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에디토리얼

나에게서 시작되는 노동의 이야기

이번 4호에서는 지난 가사노동에 이어 다른 종류의 돌봄노동인 간병노동, 그리고 아픈 몸의 노동할 권리와 노동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질병과 치료와 그 이후의 경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민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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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프리랜서 노동자이자 비혼 여성인 저는 프리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점점 건강을 잃어갔고 가난과 분투하느라 나의 몸이 보내는 신호는 뒷전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암이라는 질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중증질환들이 그렇듯 암은 오랜 집중치료와 요양을 필요로 합니다. 중증질환에 대한 국민보험의 혜택도 도움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보험을 들어둔 덕에 돌봄을 위해 가족들의 희생을 덜 수 있는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병실은 아니었지만 오랜 입원 기간 동안 간병인의 일들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언어가 수월하고 노동집약적인 일에 포진해 있는 중국 교포들은 이미 오랫동안 간병업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병원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지켜본 많은 간병인은 여성이자 외국인인 노동자였고, 새벽부터 밤까지 병실 한켠에 자신의 거처이자 일터이자 쉼터인 작은 간이 침대를 두고 환자들을 먹이고 씻기는 체력적인 일 뿐만 아니 라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진 환자들의 정서적 돌봄같은 정동노동 또한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가면서 병들고 거동이 어려운 노인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국가의 노인복지정책 때문에 많은 노인 중증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고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돌봄을 수행하는 제가 지켜본 많은 돌봄노동자들은 정작 노동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습니다.

요양보호사와 같은 간병업무는 2호에서 소개했던 가정관리사와 같이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며,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대신 간병협회 같은 곳에 가입해 위탁 도급 등의 계약을 체결하고 일합니다. 대부분 직접 고용이 아니기에 간병협회를 통해 임금을 지급받고 근로기준법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사회보험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1 새벽에도 갑자기 잠을 깨 화장실에 동행하거나 잠들지 않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야간근무같이 근로시간의 제한 규정도 없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노동을 해도 환자의 상태에 따른 노동 강도에 따라 7-10만 원 정도의 일당을 받습니다.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입니다.

사실 암 치료를 받으며 까까머리가 된 제가 병원 복도를 돌아다닐 때 쏠리는 간병인 분들의 눈빛이 처음엔 달갑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노인환자였던 병원 같은 층에서 병실 하나만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에게 저는 쉽게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그 시선에 따른 불쾌함 속에는 서로를 타자화하는 편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간병인 분들이 먼저 저의 식판을 들어주려 도와주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차를 대접받으며 일상을 나누는 교류가 있고 나서야 간병일의 중요성과 그들의 업무환경, 자신의 일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과 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환자의 보호자 또는 동료 병원노동자가 직업적인 불신을 가지고 그들을 타자화 하고 외국인 혐오와 함께 표출하기도 합니다. 우연히도 인터뷰 직후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혐오로 변질되어 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노골적인 혐오에 항의하며 8년 동안 전국의 많은 병원과 가정에서 간병사와 요양보호사로 일한 김금옥 베테랑의 인터뷰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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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큰 치료의 기간이 지나고 다행히도 많이 회복해 요양병원을 퇴원할 수 있었지만 늘 막막해하던 문제들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생존자이자 만성질환자가 된 저는 앞으로의 치료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돈과 일과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픈 몸을 스스로 돌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임금노동’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여성 비정규직이 50%이 넘는 직업적 현실과 더불어2 어떤 분야의 직무도 아파서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강도의 한국의 노동환경에서 아프게 되더라도 그 책임은 노동의 자본인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탓이 됩니다. 때문에 치료와 관리를 계속하며 저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 일을 찾는 것이란 여전히 모호하고 어렵습니다. 아픈 여성에게 적합한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의문 또한 들었습니다. 대부분이 치료와 노인지원에 집중이 되어있는 복지제도들이 있지만 그나마도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과 까다로운 조건 등의 이유로 지원 기준에 미치지 못해 복지에서 소외되기도 합니다. 치료비로 많은 돈을 소진하고 오랫동안 중단된 소득에 임금노동이 누구보다 절실합니다. 양질의 노동의 부재와 노동의 수행능력을 늘 의심받아야 할 편견 속에서 내가 나의 생계부양자가 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쉽지 않고 매일의 불안함과 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답답함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헤매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서 만난 조한진희(반다)님의 ‘반다의 질병관통기’ 라는 칼럼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묶여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 라는 부제를 달고『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으로 발간되었고 칼럼과 책에서 말하는 건강권을 넘은 ‘아플 권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픈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지쳐가는 저에게 외롭지 않고 나의 아픔을 언어화할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4호에서는 조금 더 노동에 집중해 ‘아파도 미안해 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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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번호로 한 텀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신소우주님의 펭귄어패럴 대화록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펭귄어패럴의 두번째 예술 프로젝트이자 책으로도 엮여나온 펭귄어패럴 컬렉션 <노동의 철학1 : 일자박기 연습시간>이 만들어지게 된 작업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봉제 베테랑인 명자 언니가 구로공단의 대우어패럴에서 일한 시절 가리봉오거리의 공단서점을 통해 읽을 수 있었던『노동의 철학』 을 2019년에 펭귄어패럴에서 다시 읽으면서 주변 여성 작업자들과 협업을 통해 어떻게 ‘노동의 철학’을 확장해 나가는지 살펴보시길 바라며 우리의 ‘모든 상식에 의심을’ 가져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이번 호에서는 우리 주변에 늘 있고 아주 중요한 노동이지만 주변화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질병과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의 일이라 저평가받는 돌봄노동과 아픈 여성의 노동의 문제도 결국 신자유주의적인 정상성의 기준을 수행하지 못한 개개인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게 만들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건강하기 어려운 사회는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힘든 현실에 대한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성공에의 열망에 높아지는 관심과 더불어, 현재 여성이 하고 있는 일과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계급과 성별, 연령, 인종, 장애 등을 중첩해서 바라보고 공감해야 그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다양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일과 환경에 대한 언어를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바랍니다. WSW도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정지혜
아픈 여성의 지속적인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아플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WSW를 통해 그 가능성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1.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노동> 154~155쪽,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등, 삶창
  2. <Time for Equal Pay, 성별임금격차 Fact Check>, 15쪽,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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