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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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인터뷰 – 35년차 안마사 여환숙 베테랑

모두가 살만한 세상

마땅한 것들이 있다. 시각장애인의 직업 권한 보장을 위해 특정한 직군을 그들에게 한정하는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혹자는 이에 대하여 비장애인의 직업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선 장애인의 직업적 자유 역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같은 선상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서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직업적 자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WSW는 이번 호에서 35년 동안 안마업을 지속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여환숙 베테랑을 만나보았다. 두 손으로 다른 이의 몸을 치료해주며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연남동에 사는 여환숙이고요.
1984년 맹학교 졸업하고 시각장애인 선교하고 녹음도서관에서 2년 근무하다가 1986년 4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침술원을 운영했어요. 연남동으로 2007년에 이사를 해서 2년 동안 일을 안 하려고 쉬었는데, 또 쉬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2009년에 연남동에서 지압원을 개업했어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압원을 개업한 것은 우리 시각장애인이 2005년에 시각장애인 안마업 권한을 빼앗기고 다시 찾아오는 과정에서 침술원으로 간판을 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압원으로 간판 걸면서 이제 침술원 간판을 걸 수 없으니 지압원을 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보통 맹학교에서 침술, 물리치료, 안마, 지압을 다 가르치거든요.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그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어요. 침술이라는 자격은 안마하면서 수기요법을 할 수 있게 법적 유권해석이 내려져 있었는데 2005년 안마법 위헌 사건 이후로 못하게 된 거고요. 이제 안마, 지압만 할 수 있는 국가자격증이 있어서 안마사 일을 했어요. 안마사의 국가자격증은 시각장애인한테 밖에 없어요. 근데 일반 마사지샵들은 무자격으로 하지만 저희는 또 국가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은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죠.

 

원래 안마원인 여광원을 운영하셨는데, 최근에 아산병원에 취직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취직을 하게 되셨는지, 어떤 업무를 하시는지 설명해주세요.

안마시술소라는 것 자체가 많이 없어지고 나니까 기업에서 헬스키퍼라는 제도를 협의를 해가지고 일반 기업, 병원 중에 유일하게 아산재단하고 삼성재단 병원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채용하더라고요.

저는 아침 일찍 7시부터 헬스키퍼를 경험 삼아 시작했어요. 아침반 근무가 신설되니까 제가 원래 하는 안마원 영업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헬스키퍼 갔다 와서 오후에 하면 되니까. 그래서 아산병원 의사, 간호사, 정직원들을 안마해주는 헬스키퍼 일을 하고 있죠.

*헬스키퍼(Health Keeper)
기업 등에 설치된 안마시설에서 직원의 건강관리 등의 복지를 담당하는 국가자격 안마사를 뜻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경우 2006년경 헬스키퍼를 도입했는데, 당시 몇몇 기업이 사원 복지를 위해 채용을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복지콜 불러놓고 그리고 이제 출근 준비를 해요. 비장애인보다 저희는 준비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잖아요. 아무래도 행동도 좀 느리게 되고. 저희는 천천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제가 행동이 느려요. 6시 50분까지 출근을 하려면 집에서는 6시에 출발을 해야죠. 6시 50분에 출근을 해서 7시부터 일을 시작해요. 그래서 10시 반에 끝나면 그때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거죠.

여환숙 베테랑이 안마를 하고 있다. 두 손이 안마 받는 사람의 몸을 지압하고 있다.

안마사라는 직업은 시각장애인만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비장애인이 운영하는 마사지샵, 에스테틱샵 등을 시각장애인 안마원보다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베테랑님이 체감하시기에 장애인복지법 같은 법안이 장애인 노동 권리를 얼마나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고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게 권리를 가져오는 대신에 침술은 한의사들이 반대를 하니까 내어주는 조건으로 이 권리를 가지고 왔는데, 말만 시각장애인만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지 밖에 나가면 무자격자들 단속은 안 하잖아요.

늘어나는 게 마사지샵이라 지압원들도 생존하는 게 쉬운 건 아니죠. 그래서 안마, 지압원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렵게 일궈나가고 있는 거죠. 물론 잘되는 데도 많지만 그 안마원에서 안마사들을 다 수용할 수 없고 그러니까 기업이나 병원, 재단 이런 데에 헬스키퍼로 나가고 있는 거고요.

얼마 안 되는 존재하고 있는 안마, 지압원도 사실 무자격자들 때문에 많이 살아남기는 쉬운 일은 아니고 어려운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래도 그 많은 사람, 업소들 중에서 저희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너무 많다는 거죠. 시각장애인들만 하면 그렇게 안 많을 텐데. 시각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들이 하다 보니까… 그렇잖아요. 편견 있는 비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하는 데 가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시각장애인들이 하는 데는 그 사람들보다는 실력으로 경쟁을 해야 하니까. 힘들게 경쟁하고 살아남기는 어렵죠. 우리나라가 장애복지법이 통과되어 그래도 옛날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장애인들한테 와서 받는 것보다 비장애인들한테 와서 받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도 꼭 시각장애인들한테만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존재하지. 안마는 시각장애인들만 하나 보다. 국가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시각장애인이다. 하고 오는 사람도 있죠. 그래도 그 사람들 가지고는 우리도… 대중화는 안 되어있다는 거예요.

“의료법 제 82조 제 1항은 “안마사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시각장애인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로 시ㆍ도지사에게 자격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3년 첫 합헌 결정 후, 여섯 차례의 관련 재판이 진행되었고 한 번의 위헌 판결과 다섯 번의 합헌 판결이 있었다. 법적인 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장 단속은 한 해 평균 40건에 불가하다.

여환숙 베테랑이 시각장애인 전용 타자기(점자 디스플레이)을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에 글쓰기로 상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요? 종종 글을 쓰시나요?

제가 실명해서 수필이라고나 할까. 저는 실명했을 때 정말 죽을 연구밖에 안 했는데 그것도 자유가 없으니까. 이제 살아서 육체적으로는 내가 남의 도움을 받아도 경제적으로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아들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한다, 공부할 수 있는 등록금 대주고, 아플 때 남한테 돈 꾸러 안 간다, 그거는 내 힘으로 해야 되겠다는 오로지 그거 남한테 돈 꾸러는 안 가야 되겠다. 그런 힘으로 살아가서 지금까지 우리 애들 원하는 거 다 해줬고. 남들처럼 부자 집안이나 돈이 많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아왔다는 거. 그런 거에 대해서 수기라고나 할까 수필이라고나 할까. 조금씩 쓴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옛날에 또 인공각막 이식수술을 해서 10년 동안 눈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눈 본 과정에 대해서 글을 써내라 해서 많이 써냈어요.

제가 살아온 과정이 조금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살아보니까 글 쓰네 하면 가끔 수필 비슷하게 써낸 적이 몇 번 있는데 그게 당선이 돼서 발표 난적은 몇 번 있습니다.

 

일을 하시면서 어렵고 힘드셨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안마는 힘으로 해야 되는 게 힘이 들고. 침놓을 때는 침은 그냥 머리로 해야 하니까 머리를 써야 하고. 침놓을 때는 아무래도 한의원들이 고발을 많이 하니까 간판 내려라. 그런 말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그럴 때는 힘이 들고. 지금은 나이도 들고 그러니까 육체적인 힘이 들고. 뭐 사람들 상대하는 건 재밌죠. 크게 사람들 상대하는 건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할 수 있을 때까진 하려고 노력하죠.

간혹 비장애인이 하는 줄 알고 왔는데 시각장애인이면. ‘어머 시각장애인도 해?’하고 그런 거부 하는 사람은 어쩌다가 지금까지 몇몇 있었다고 볼까. 그래서 가시는 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지금은 그래도 전체적으로 많이 장애인 인식이 있어서. 처음엔 그런 게 되게 많았죠.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침놔?’ 그런 식으로 하면서 갈 때도 많았죠. 지금은 그래도 아시는 사람들은 아시는. ‘제대로 하는데 잘 찾아왔네.’ 이러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제대로 오는 내가 잘 찾아왔네. 시각장애인이 하는 데를 찾아왔네.’ 그럼 그때는 또 그래도 아 살만한 세상이네 그런 생각이 들고.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해 그럴 때는 좌절감도 들고.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져서 좌절감 같은 건 없고. 중도실명을 했을 때 많이 좌절했지만 지금은 그냥 당당하게 이 사회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여환숙 베테랑이 쓴 글이 실린 책의 모습이다. 책에는 여환숙 베테랑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그가 쓴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손님들이 다른 사람 데리고 올 때. 연결, 연결. 저는 인터넷 광고 이런 것도 안 해봤는데 하도 그냥 요즘 와서 인터넷 광고해보라고 했지만. 신촌에서 할 때는 절대로 광고 홍보 이런 거 해본 적 없어요. 사람이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게 제일 좋은 고객이에요. 여기서 직접 안마받고 효과보고 가서 다른 사람 데리고 오는. 그 고객들이 늘어날수록 살아가는 데 힘이 돼요.

 

일을 언제까지 하고 싶으신지요? 일을 하고 계신 것에 만족하시나요?

글쎄, 헬스 키퍼는 나이 제한이 있는데, 일단 2년 계약을 했으니까 그때까지 계약 연장을 해준다고 해도 그때까지 힘이 안 따를 것 같고. 집 안에서 하면, 나 혼자서 살살하는 거는 내가 아프지 않으면 하지 않을까.

 


 

인터뷰 정리 윤여준
촬영 황유정
편집 황유정 강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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