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working, 윤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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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5월의 일기

노동절과 마들렌_<우리의 일에 대하여>를 읽고

마들렌

베이킹을 시작했습니다. 머핀으로 시작하여 마들렌, 브라우니, 만드는데 24시간은 걸린 것 같은 치아바타에 이르기 까지, 틈만 나면 빵을 굽습니다. 어김없이 빵을 반죽하고 있던 오늘 아침, 문득 제 모습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노동절에 빵을 굽고 있다니!” 어색했습니다. 어색한 포인트는 두 곳입니다. 노동절에 쉰다는 것과,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 작년까지 노동자가 아니거나 노동절을 휴일로 생각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해온 제가 노동절을 환영하는 노동인이 된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휴일 날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제 모습은 더 새로웠습니다. 일로 점철되지 않을, 일과 관련되지 않고,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아도 될 행위를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니! 드디어 취미가 생긴건가! 싶어 조금 기뻤다가 조금 울적했습니다.

요즘 저는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부터 미술계에서 일 해왔지만,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기다리며 일을 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연초에는 꼭 구직에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작년의 번아웃 이후 불안 없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깊어졌고, 반려인과의 독립을 위한 자금도 빨리 모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 일자리는 최저시급과 정확히 일치하는 월 179만 5310원을 지급하였고, 그 마저도 딱 한 자리씩, 외국어 우대자로 나왔습니다. 그나마 공공기관은 서울시 생활임금에 맞추어 220만원 이상의 월급을 주었고,  안정과 자금마련이 시급한 저에겐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크게 재미는 없지만 지루하진 않았고, 무엇보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경제시장을 보며 일자리를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공공기관은 안정적이며 괜찮은 복지혜택을 지녔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육아 노동자를 위해 6월 말까지 재택근무를 진행함은 물론, 가족돌봄 휴가를 적극 권장하고, 5월 4일과 같은 샌드위치 데이의 휴가도 권장하는 등 정부가 제시한 노동환경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풍족한 사무용품과 품질 좋은 프린터들도 효율적인 근무환경에 한 몫을 합니다. 

몇주 전, 돈 버는 일과 재미를 찾는 일을 구분하고 병행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경제활동과 자아실현을 구분하는 노동 방식이 어쩌면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안정적으로 출퇴근하며 적당히 일하고, 개인 시간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내는 생활. 요즘은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퇴근 한 후,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기획을 꾸리는 미팅을 하곤 합니다. 물론 굉장히 천천히 진행되고 있지만요.

미술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젝트 <우리의 일에 대하여>를 보며 현재의 제 가장 큰 관심사도 미술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먹고 사는 방법이라는 걸 한 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에 대하여>가 제시한 더 많은 일을 미술 일로 여기는 방식 속에 제가 얼마 전 생각하게 된 일과 자아실현을 구분하는 일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제 요즘의 생각을 건네봅니다. 안정적이고 싶은 Y가 노동절에 빵을 구우며 살았으면 좋겠고, 재밌고 싶은 J가 가능한 오래 흥미로운 일들을 꾸렸으면 좋겠습니다 1)

1) HG, ‘일을 그만두고 싶은 H와 일하고 싶은 G‘, 「우리의 일에 대하여」의 이야기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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